2020. 11. 14. 07:23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삼상4:1~4, 그 무렵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모여들었다. 이스라엘 사람은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나가서 에벤에셀에 진을 쳤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을 쳤다. 블레셋 사람이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 사람을 치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이 싸움에서 블레셋에게 졌고, 그 벌판에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은 사천 명쯤 되었다. 이스라엘의 패잔병들이 진으로 돌아왔을 때에, 장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가 블레셋 사람에게 지도록 하신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실로에 가서 주님의 언약궤를 우리에게로 모셔다가 우리 한가운데에 있게 하여,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하여 주시도록 하자!"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실로로 사람들을 보냈다. 그들이 거기 그룹들 사이에 앉아 계시는 만군의 주님의 언약궤를 메고 왔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올 때에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함께 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말의 여유로운 아침을 누리시길 빕니다.
지친 몸과 마음도 회복되시길 빌고,
또한 주일을 준비하는 거룩한 휴일이길 빕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견원지간 같은 사이였습니다.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어서
서로 부딪치는 일도 많았어요.
블레셋은 영어로 필리스티아(Philistine)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팔레스타인의 어원을 가진 이름이죠.
그렇다고 지금의 팔레스타인이 블레셋의 후손이라는 근거는 없습니다.
아마도 이름이 차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복잡한 문제라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구약시대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틈만 나면 싸웠습니다.
특별히 사사시대에는 더욱 그랬어요.
오늘도 여전히 서로 싸웁니다.
왜 싸웠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조차 없을 정도로
이들은 그저 만나면 싸웠습니다.
성경은 블레셋이 시비를 거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사실 싸움이 어디 일방적인 잘못으로 이루어지겠습니까?
각기 자기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방이 다 잘못한 것이죠.
오늘 본문은 애매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블레셋과 싸워서 진 이스라엘이,
진 이유를 하나님에게서 찾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법궤, 곧 그분을 자신들의 중심으로 세웠다는 것으로 설명하기 쉬운 본문입니다.
겉으로는 말이죠.
그러나 그 내면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싸움에서 지자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하죠.
"주님께서 오늘 우리가 블레셋 사람에게 지도록 하신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이는 마치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님의 뜻을 찾자는 의미처럼 말이죠.
그런데 기실 그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사시대에 모든 일에서 자기 소견대로 했던 이스라엘이,
고통받고 억압받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그분의 뜻을 찾지 않아서입니다.
그런데 지금이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찾았겠습니까?
그런 의미로 보면 이 말은,
자신들의 패배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말이 될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거죠.
이는 우리의 내면에서도 쉽게 발견합니다.
자신의 잘못, 자신의 책임, 또한 자신의 할 일은 하지 않고,
문제만 생기면 하나님 탓을 하는 우리의 심보가 있습니다.
자기의 뜻대로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하시느냐고 소리치는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마치 자신들은 할 일을 다한 양 말이죠.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매고 옵니다.
이 법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지금 그리 중요치 않습니다.
지금 그들에게 하나님의 법궤는,
그 옛날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들었던
금송아지와 진배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마치 자신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도깨비방망이처럼 사용하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리 생각합니다.
나와는 상관없이 일하시는 분으로 생각하죠.
도깨비방망이는 나의 인격, 나의 심령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저 두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기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도깨비방망이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죠.
정작 도깨비방망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시니까요.
우리의 심령, 우리의 마음,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의 꿈, 우리의 소망, 우리의 바람을 통해
하나님은 나라를 만드시죠.
우리와 상관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심장이 없이 하나님의 역사도 없습니다.
내가 온전히 서야 온전하신 하나님의 일이 드러나고,
내가 올바로 걸어야 올바르신 하나님의 시간이 만들어집니다.
내가 아름다운 뜻을 세워야 아름다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내가 가치 있는 소망을 품어야 가치로운 주님이 일하십니다.
주님은 나를 통해 일하십니다.
주님이 나의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내가 주님의 도깨비방망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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