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20 - 빛은 어둠을 뚫고 나옵니다.

2020. 10. 31. 07:08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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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22~26   

엘리는 매우 늙었다. 그는 자기 아들들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저지른 온갖 잘못을 상세하게 들었고, 회막 어귀에서 일하는 여인들과 동침까지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타일렀다. "너희가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하느냐? 너희가 저지른 악행을, 내가 이 백성 모두에게서 듣고 있다. 이놈들아, 당장 그쳐라! 주님의 백성이 이런 추문을 옮기는 것을 내가 듣게 되다니, 두려운 일이다. 사람끼리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중재하여 주시겠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변호하여 주겠느냐?" 아버지가 이렇게 꾸짖어도,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께서 이미 그들을 죽이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한편,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 공기가 차네요.

옷을 하나 더 걸쳐 입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느덧 벌써 겨울이 우리 앞에 바짝 다가왔네요.

이쯤 되면 산마다 단풍이 들고,

그 화려한 빛깔에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 계절입니다.

언제부턴가 '단풍구경'이 하나의 일상처럼 되었죠.

코로나로 앓고 있는 올해는 어떨까 싶네요.

 

단풍이 지는 것을 우리는 아름다운 광경으로 지켜보지만

정작 나무들은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제 알록달록하게 물들었던 잎새들은 낙엽이 될 거예요.

이는 각 나무들의 생존 전략입니다.

겨울을 대비하는 거죠.

추위를 견디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은 제거를 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바짝 엎드려 

줄기와 가지 등에 다양한 영양소를 비축한다고 해요.

마치 겨울잠을 자듯 말이죠.

그리고 그렇게 비축된 영양소들은 봄이 되면

마치 폭죽을 터뜨리듯 싹을 틔우죠.

 

어쩌면 겨울은 식물에게 잔인한 계절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겨울은 또 식물에게 가슴 벅찬 기다림일지도 몰라요.

겨울이 있어 새싹이 나고,

겨울이 있어 만개하는 꽃들이 빛나니까요.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10달 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뚫고 나오듯

갇힌 환경과 닥친 상황 속에서 하나씩 헤쳐나가는 것이 인생이죠.

오랜 기다림은 그래서 큰 감격이 되고,

오랜 아픔은 그래서 큰 감사가 됩니다.

 

다시 엘리의 아들들 이야기입니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죠.

굳이 새로운 사실을 꼽자면,

엘리가 아들들의 악행을 알았고, 

그 악행들에 대해 가슴 아파했다는 점 정도입니다.

어제 엘리의 후회가 읽힌다는 묵상처럼,

엘리의 호통은 어쩌면 자신을 향한 것인지도 몰라요.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엘리 아들들의 악행도, 

엘리의 후회도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벌써 세 번째입니다.

11절에,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 곁에 있으면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되어 있었죠?

큰 틀에서 보면,

주님을 무시하고 거스르는 불의한 제사장 집에서도

사무엘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죠.

 

이는 21절에 다시 반복됩니다.

엘리 아들들의 악행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죠.

 

'어린 사무엘도 주님 앞에서 잘 자랐다.'

 

그리고 오늘 본문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의 또 다른 악행들을 열거하면서

같은 패턴의 말을 세 번째 적고 있죠.

 

26   한편, 어린 사무엘은 커 갈수록 주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이것은 정확하게 의도적인 글솜씨입니다.

그러니까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서, 

이렇게 비교육적인 환경 가운데,

이렇게 볼 것 없고, 배울 것 없고, 따를 것 없는 가운데,

아니,

오히려 잘못될 가능성이 더 많고,

선함보다 악함을 더 많이 보고 배울 가능성이 농후한 곳에서도,

사무엘은 꿋꿋하게 '잘' 자랐다는 것이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일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환경 탓을 정말 많이 하죠.

다 그것이 환경 탓이고, 사회구조적 모순이라고 말하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자랐다고 말이죠.

보고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다고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모든 길이 꽃길이면 좋을까요?

온통 꽃들로 뒤덮인다면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나의 마음은 얼마나 갈까요?

경부고속도로가 직선이었다면 어떨까요?

운전이 편했을까요?

아니면 졸음이 몰려왔을까요?

 

빛은 어둠을 뚫고 나옵니다.

부활은 죽음을 뚫고 나오고요.

교회는 세상을 뚫고 나오죠.

 

돌파력,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사명 인지도 몰라요.

어둠을 뚫고 빛으로,

죄를 뚫고 의로움으로,

그렇게 세상을 뚫고 하나님의 나라로 걸어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이지 않을까요?

 

오늘도 엘리 아들들이 지배한 환경을 뚫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하루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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