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9. 06:51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삼상2:12~17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빴다. 그들은 주님을 무시하였다. 제사장이 백성에게 지켜야 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도 무시하였다. 누군가가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고 있으면, 그 제사장의 종이 살이 세 개 달린 갈고리를 들고 와서, 냄비나 솥이나 큰 솥이나 가마솥에 갈고리를 찔러 넣어서, 그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사장의 몫으로 가져갔다. 실로에 와서 주님께 제물을 바치는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이런 일을 당하였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아직 기름을 떼내어 태우지도 않았는데, 제사장의 종이 와서, 제물을 바치는 사람에게 "제사장님께 구워 드릴 살코기를 내놓으시오. 그분이 원하는 것은 삶은 고기가 아니라 날고기요!" 하고 말하곤 하였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이 그 종에게 "먼저 기름을 태우도록 되어 있으니,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원하는 것을 가져가시오!" 하고 말하면, 그는 "아니오. 당장 내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가져가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엘리의 아들들은,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이렇듯 심하게 큰 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주님께 바치는 제물을 이처럼 함부로 대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가 우리 삶의 자리에 임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흐르길 원하고,
주님의 성령이 우리 사이에 운행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의 아들들의 악행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이름은 홉니와 비느하스인데요.
그들은 아버지를 대신해 제사장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경에서 그들을 제사장이라고 호칭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로 '엘리의 아들들'이라고 말하죠.
보통 제사장직은 세습의 전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제사장이라는 호칭이 쓰이지 않은 것은,
그들의 인품 자체가 제사장으로서 자격이 없었거나,
혹은 정상적인 제사장의 직분을 이어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그들은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들은 주로 자신들을 위한 착복의 수단으로 그들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그 예들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죠.
제사에 드리는 고기를 낚시하듯 가져가고,
아직 제사의 절차를 밟지도 않은 제물을 강제로 빼앗기도 했죠.
제사장의 규정들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 방법은 크게 5가지로 나뉩니다.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그리고 화목제, 이렇게 나뉘죠.
간단히 설명하자면,
번제는, 제물을 태워 연기를 하나님께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제사법은 유일하게 제물을 완전히 다 태웁니다.
소제는, 주로 곡물을 드리는 제사를 말하고요.
속죄제는, 고의적이지 않은 실수나 무지에서 비롯된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죠.
이와 대조적으로 속건제는, 드러난 죄, 규례를 어겼거나 사람에게 해를 준 일들에 대한 용서의 제사입니다.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은 주로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사법은 아마도 화목제였던 것 같아요.
이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평화를 위한 제사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다리가 되어주신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 제사법으로 알려져 있죠.
율법에 따르면 이 화목제는
먼저 기름은 떼어서 태우고 화목제를 드리고 나면
가슴과 우편 뒷다리를 제사장에게 드렸다고 해요.
그리고 나머지는 제사를 드린 사람이 먹게 되어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제사의 제물은 제사장 몫이었던 셈이죠.
그런데도 엘리의 두 아들들은 왜 그것을 강제로 빼앗고 탈취했을까요?
재미로 그랬을까요?
재미라기에는 강제성과 협박이 강해 보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기다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없어질까 봐 그랬을까요?
자신들에게 주지 않을까 봐 그랬던 것일까요?
어쩌면 정당성이 없는 위치였기에 불안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기다리면 저절로 오고,
기다리면 순리대로 되는 일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기다리지 못해서 망치는 일들이 있죠.
서두르다가 실수하고,
욕심에 지나치게 오버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때론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열심이라는 합리화로 자신의 욕심과 믿음 없음을 포장하며
서두르다가 넘어질 때가 있어요.
불안하면 서두르죠.
믿지 못하면 서두르고,
욕심이 앞서면 서두릅니다.
서두르면 이스마엘이 되고,
기다리면 이삭이 됩니다.
서두른다고 나이가 빨리 먹는 것도 아니고,
서두른다고 거저 얻어지는 것도 없어요.
나에게 올 것은 반드시 오고,
나를 만드신 그분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내가 서두르지 않으면 말이죠.
내가 믿고 기다리며 그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면 말입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너무 잘하려고도 하지 마세요.
잘하려는 마음도 서두름과 만나면 욕심이 됩니다.
열정도 서두름과 함께하면 상처를 부르죠.
주님이 나를 만드시고 나의 아버지심을 믿는다면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분이 나를 고아처럼 버리지 않으심을 믿는다면
성급하게 자신을 판단하지 마세요.
서두르지 않아도 올 것은 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주실 것은 반드시 얻습니다.
'묵상하는말씀 > 사무엘서묵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서묵상일기23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0) | 2020.11.05 |
---|---|
사무엘서묵상일기22 -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옵니다. (0) | 2020.11.03 |
사무엘서묵상일기21 -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0) | 2020.11.02 |
사무엘서묵상일기20 - 빛은 어둠을 뚫고 나옵니다. (0) | 2020.10.31 |
사무엘서묵상일기19 - 평범한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0) | 2020.10.30 |
사무엘서묵상일기17 - "기대할수없는 어둠속에서도 주님을 섬기는 자로 자랐다" (0) | 2020.10.28 |
사무엘서묵상일기 16 - 아무도 모릅니다. (0) | 2020.10.27 |
사무엘서묵상일기15 - 가치 앞에서 우리는 정결해질 수 있습니다. (0) | 2020.10.26 |
사무엘서묵상일기14 - 기도의 완성은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0) | 2020.10.24 |
사무엘상묵상일기 13 - 그런 날이 반드시 옵니다. (0) | 2020.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