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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느헤미야서묵상 67 -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느13:15~22)

새번역성경
15   그 무렵에 유다에서는, 안식일에도 사람들이 술틀을 밟고, 곡식을 가져다가 나귀에 지워서 실어 나르며, 포도주와 포도송이와 무화과 같은 것을 날라들였다. 안식일인데도 사람들이 이런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이 나의 눈에 띄었다. 나는 안식일에는 사고 파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16   예루살렘에는 두로 사람도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안식일에 물고기와 갖가지 물건을 예루살렘으로 들여다가, 유다 백성에게 팔았다.
17   그래서 나는 유다의 귀족들을 꾸짖었다. "안식일을 이렇게 더럽히다니, 어쩌자고 이런 나쁜 일을 저지르는 거요?
18   당신들의 조상도 똑같은 일을 하다가, 우리와 우리 도성이 모두 하나님의 재앙을 받지 않았소? 당신들이야말로 안식일을 더럽혀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위에 진노를 내리시도록 하는 장본인들이오."
19   나는, 안식일이 되기 전날은, 해거름에 예루살렘 성문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성문들을 닫도록 하고,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문을 열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또, 나를 돕는 젊은이들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20   그 뒤로도, 장사하는 이들과 갖가지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는 일이 한두 번 있었다.
21   나는 그들도 꾸짖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성 밑에서 잠을 자고 있소? 다시 한 번만 더 그렇게 하면, 잡아들이겠소."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 안식일에는, 그들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22   나는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깨끗하게 하고 와서 성문마다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고 하였다."나의 하나님, 내가 한 이 일도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지없이 크신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너그러이 보아주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첫 생각과 첫 마음, 첫 말은 무엇이었나요?
첫인상이 중요하듯, 
오늘을 시작하는 나의 첫 반응 또한 
하루를 좌우하는 큰 기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을 내가 만드는 것이죠.
여러분의 오늘은 감사와 웃음으로 시작되길 빕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느헤미야의 기도가 이어집니다.
이 또한 짧은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까지 읽고서야 그의 기도가 
그의 결심과 결단의 종합적 고백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어제의 기도는 
우리의 꾸준함이 없이는 영성을 지킬 수 없고,
우리의 꾸준함 없이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기도였죠.
저는 이것이 느헤미야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첫 번째 개혁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매일 묵상을 꾸준히 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매일 기도와 예배를 꾸준히 지켜야 하는 이유,
그것은,
그런 꾸준함 없이 깊은 영적인 세계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꾸준함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죠.
또한 영적 꾸준함 없이는 
각종 옛사람의 유혹과 속임수를 이겨낼 재간이 없음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기도는 어떤 개혁의 메시지일까요?

본문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버젓이 사고파는 일을 행하고,
금지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회를 노리며
안식일의 규정들을 어기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안식일에 대한 규율을 지키고자 맹세했던 이들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규율은 사문화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저는 느헤미야서를 묵상하면서
안식일의 문제는 안식일만의 문제가 아님을 함께 나눴지요.
안식일의 규율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요.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는 단순한 주일 성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이심을 인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느헤미야의 두 번째 영적 개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젊은이들과 레위인들을 정결케 하고,
그들로 하여금 성문을 지키게 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잡상인을 거르는 문지기처럼 보이는데요.
저는 이것이 온전한 인생의 첫 관문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것이 
인간 회복의 첫출발이라는 것이죠.
창세기 첫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씀에 이르러 한 가지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전도서 12장의 말씀입니다.

전 12:1~2,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마치 전도서 기자는,
인생의 끝에서 지난날들을 후회하며 외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의 외침의 핵심은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이죠.
그것도 청년의 때에 말입니다.
어쩌면 이 말은 ‘처음부터’라는 뜻일지도 몰라요.
시작부터, 일찌감치, 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너는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말입니다.

어제와 오늘의 묵상을 이어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기억하라. 꾸준히.

오늘도 이것을 기억하며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요.
나의 주인 되시고, 
나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고요.
그분이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공의와 진리로 다스리신다고요.
우리는 오늘 그런 하루를 사는 겁니다.
주님이 만들어주신 하루,
주님이 허락하신 시간,
주님이 맡기신 삶이 내 앞에 펼쳐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아침, 처음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이런저런 생각, 어제의 감정, 오늘의 할 일, 

아마도  여러 종류의 생각들이 있으셨겠죠?
그러나 그 모든 생각보다 먼저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오늘 살아있다는 것이죠.
내가 존재한다는 것, 그 위에 다른 것이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우리는 그런 사실을 종종 잊습니다.
너무 당연해서일까요?
아마도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분이라면,
그분은 생명에 대한 소중한 경험을 가지셨거나, 
혹은 깊은 성찰의 경험이 있는 분이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뼈저린 경험이 없이는 자주 잊어요.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잊어도 생명 위에 오늘이 있습니다.
내 존재 위에 걱정이 있고,
내 존재 위에 그리도 중요하게 따지는 내 생각과 기분과 감정이 존재하죠.
그래서 간혹 자신의 존재를 먼저 깨닫는 이들은
나를 망치는 기분이나 감정들이 어느덧 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라는 사실이죠.
그분이 있고 내가 있으며,
그분의 생각 속에 나의 문제도 있고,
그분의 섭리 안에 나의 삶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안식일로 지키는 여러분 되시기를 빕니다.
매 순간이 우리에게는 안식일처럼 말이에요.
매일매일, 꾸준히, 창조주를 기억하는 당신에게
축복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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