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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느헤미야서묵상 63 - 말씀은 문자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새번역성경
1   그 날, 백성에게 모세의 책을 읽어 주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2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맞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우리가 저주를 받도록 빌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다."
3   백성은 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섞여서 사는 이방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분리시켰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님의 안위하심과 돌보심이 함께하는 오늘을 기도합니다.
평안은 저절로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찾고 구하고 쟁취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감사와 기쁨을 구하며 시작하는 하루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장에 다다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 봉헌식을 하는 동안 또다시 모세의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성벽을 완성한 이후, 그들이 처음 한 일이 말씀을 읽는 일이었죠.
그리고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절기도 세우고, 예배도 회복하죠.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 말씀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에서 시작되니까요.
지금 당장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어떤 길이 맞는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기 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울부짖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기도하는 것을 신앙의 근본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죠.
때로는 예배와 의식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서
자신의 신앙의 척도를 규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말씀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뜬구름이 될지도 몰라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기도나 예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지금 불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표현과 실천은 무척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표현은 실력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표현이 어떤 의미에서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 어떤 마음, 어떤 가치관에서 행동하느냐? 는 것이죠.

종교적 행위는 거의 비슷합니다.
모든 종교에 기도가 있고, 제사가 있으며, 규례들이 있죠.
봉사와 구제, 나눔과 사랑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도움 자체만을 놓고 보자면,
사랑의 도움이나 사기꾼의 도움은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기를 목적으로 한 도움의 손길이 더 감동적일지도 몰라요.

오늘 본문은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합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이는 신명기 23:3의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암몬과 모압은 유대민족과 같은 혈통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혈통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들은 출애굽 당시 유대민족을 돕지 않았습니다.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와 공작을 일삼았죠.
이를 두고 신명기는 그들을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이를 읽은 유대 백성들은 곧바로 이방인 분리 작업을 시작합니다.
어찌 보면 이방인 배척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죠.

많은 이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느헤미야의 개혁작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개혁작업은 이방인을 축출하고, 
선민사상을 강조하는 쪽으로 해석하기도 하죠.
오늘날 이런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이방인이나 타 종교인들에 대한 배척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잘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벽을 쌓고 민족을 재건하는 유대 백성들은 과거를 돌아보죠.
그리고 자신들이 잘못된 길을 걸었음을 회개합니다.
또한 되돌리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하죠.
그러려면 과거의 잘못을 반면교사 삼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 잘못이 자신들의 ‘불순종’이라고 여겼어요.
그래서 말씀을 다시 꺼내 읽고, 그 말씀을 철저히 지키려고 한 것이죠.
오늘 이 모습은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이방인을 배척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내가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 것을 지적하는 말씀이에요.
말씀을 듬성듬성 읽어서, 아니 말씀을 중요히 생각하지 않아서,
나의 삶이 꼬였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인 셈이죠.

말씀은 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행동도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리죠.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기도는 이기적인 주장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율법은 타인을 죽이는 칼이 되고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예배는 그저 형식이 되죠.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는,
그분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이렇게 말했죠.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게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모든 행위는 길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올바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이 아픈 당신의 곁에서 함께 아파하십니다.
그분이 지친 나의 마음에 함께 울고 계십니다.
그분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의 잘됨을 바라시며, 때를 기다리시고, 늘 함께 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을 알고 보는 세상은 분명 다릅니다.
그분의 마음을 느끼며 사는 삶은 분명 다릅니다.

오늘, 주님의 마음이 여러분들께 깊이 전해지길 기도합니다.
그분의 마음이 느껴지는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그 안에서 위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흐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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