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묵상 61 - 신앙은 주님이 내게 하신 일을 '기억'하고, 또 주님이 내게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서 12:31~43)

2020. 7. 14. 06:46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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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번역성경
31   나는 유다 지도자들을 성벽 위로 올라오게 하고, 감사의 찬송을 부를 큰 찬양대를 두 편으로 나누어 서게 하였다. 한 찬양대는, 오른쪽으로 '거름 문' 쪽을 보고 성곽 위로 행진하게 하였다.
32   호세야가 이끄는 유다 지도자의 절반이 그 뒤를 따르고,
33   또 아사랴와 에스라와 므술람과
34   유다와 베냐민과 스마야와 예레미야가 따랐다.
35   그 뒤로 일부 제사장들이 나팔을 들고 따르고, 그 다음에 스가랴가 따랐다. 그의 아버지는 요나단이요, 그 윗대는 스마야요, 그 윗대는 맛다니야요, 그 윗대는 미가야요, 그 윗대는 삭굴이요, 그 윗대는 아삽이다.
36   그 뒤로는 스가랴의 형제인 스마야와 아사렐과 밀랄래와 길랄래와 마애와 느다넬과 유다와 하나니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만든 악기를 들고 따랐다. 서기관 에스라가 그 행렬을 이끌었다.
37   그들은 '샘 문'에서 곧바로 다윗 성 계단 위로 올라가서, 성곽을 타고 계속 행진하여, 다윗 궁을 지나 동쪽 '수문'에 이르렀다.
38   다른 한 찬양대는 반대쪽으로 행진하게 하였다. 나는 백성의 절반과 더불어 그 뒤를 따라서 성벽 위로 올라갔다. 이 행렬은 '풀무 망대'를 지나서, '넓은 벽'에 이르렀다가,
39   '에브라임 문' 위를 지나, '옛 문'과 '물고기 문'과 '하나넬 망대'와 '함메아 망대'를 지나서, '양 문'에까지 이르러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에서 멈추었다.
40   감사의 찬송을 부르는 두 찬양대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멈추어 섰다. 나 역시 백성의 지도자 절반과 함께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섰다.
41   제사장 엘리야김과 마아세야와 미냐민과 미가야와 엘료에내와 스가랴와 하나냐는 다 나팔을 들고 있고,
42   마아세야와 스마야와 엘르아살과 웃시와 여호하난과 말기야와 엘람과 에셀이 함께 서 있었으며, 노래하는 이들은 예스라히야의 지휘에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43   그 날, 사람들은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기뻐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기쁘게 하셨으므로, 여자들과 아이들까지도 함께 기뻐하니, 예루살렘에서 기뻐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좋은 아침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감사로 시작할 수 있기를 빕니다.
첫 입술, 첫 생각, 첫 마음이, 기대와 기쁨으로 채울 때, 주님의 응답이 우리의 시간으로 임하실 줄 믿습니다.

 

성벽 봉헌식이 거행됩니다.

봉헌식을 채우는 것은 찬양이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성가대가 조직된 것이죠.

그러고 보면 이스라엘의 행진에는 늘 성가대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빠짐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늘 맨 앞자리를 차지하였죠.

어쩌면 성가대가 길을 인도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입니다.

 

어제 묵상에서 우리는 마음을 확정하고 입술로 시인하며 살아야 한다고 고백했어요.

그것은 우리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죠.

 

요 1:12,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여기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특권을 받아서 주님을 믿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믿기로 작정했기에 자녀의 특권이 주어진 것이죠.

 

대가를 바라며 기브 앤 테이크를 원칙으로 삼는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보상이고, 거래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 믿음이 주님을 움직여 길을 만들고, 강을 내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확정하고 입으로 선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침마다 먼저 정한 나의 마음과 입술의 선포가 그날을 만듭니다.

감사를 드리면 감사한 일이 일어나고, 찬양을 드리면 찬양할 일이 생깁니다.

그것이 믿음의 법칙입니다.

 

오늘은 그 성가대가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그려지는데요.

그들은 성벽에 올라, 한 팀은 오른쪽으로, 다른 한 팀은 반대쪽으로 행진하며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뉘어서 행진하는 이들의 이름도 빼곡히 기록하고 있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아마도 성벽을 직접 밟으며 찬양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죠.

나눠진 것 또한 어쩌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조금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알레고리칼한 해석일지라도 주어진 마음이기에 나누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찬양에는 2가지 감정, 혹은 영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성벽을 밟으며 찬양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지난 세월이 기억났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어렵사리 성벽을 쌓던 일들이 떠올랐을지도 모르죠.

아니, 그 이전의 포로 생활들, 그곳에서 기적처럼 귀환했던 일들까지 떠올렸을 거예요.

마치 회한 같은 것들이 떠오르고, 복받치는 감격들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눈앞에 펼쳐졌으니까요.

어찌 포로 시절이 끝날 줄 알았겠습니까?

어찌 고향에 돌아와 자신들의 땅을 회복하는 일, 신앙이 회복되는 것을 꿈이라도 꿨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꿈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을 경험하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야말로 감격과 감사가 절로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찬양은 그렇게 주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찬양이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포인트예요.

또 다른 한 줄기의 영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그들이 과거의 회상에만 그쳤겠습니까?

그 성벽을 밟으면서 옛날 일들만 떠올렸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이제 이 성벽을 지켜내야 할 책임감과 의무도 떠올렸을 것입니다.

어쩌면 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을 거예요.

아니, 이전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삶을 꿈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그렇게 찬양은 기억에 그치지 않고, 기대로 나아갑니다.

 

뭐라고요?

회상과 추억에 젖은 기억에 그치지 않고, 바라고 원하고 꿈꾸는 기대에까지 이른다고요.

그것이 찬양이고, 그것이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가 그렇습니다.

찬양이 그렇고, 믿음이 그렇고,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이제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아침에도 우리는 어제를 감사하고, 또 오늘을 기대해야 합니다.

오늘의 시간을 기대로 출발해야 합니다.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는 오늘을 만드실 주님, 오늘 나를 위해 일하실 주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해요.

그렇게 기억과 기대를 잃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는 여러분들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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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유튜브 (음성으로 매일묵상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youtu.be/fZA8nQCGy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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