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6. 06:32ㆍ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다짐에는 행동이 따르는 법이죠.
이스라엘은 이제 자신들이 해야 할 행동을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전한 것은 성전세를 내는 일이었어요.
일종의 헌금인 셈이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기에 필요한 물품과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것을 십시일반 하는 규정을 정한 것입니다.
이런 규례를 정한 것이 그들에게 충분한 제물이 있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들은 매년 1/4 세겔을 세금으로 정했는데요.
이 성전세는 출애굽 당시에도 있었어요.
그때 정해진 세율이 반세겔이었던 것을 보면 오히려 줄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죠.
나라를 잃고 식민지배하에 있었으며, 대부분의 일손은 포로로 끌려갔다가 이제 막 돌아왔으니 사정이 나을 리가 없었겠죠.
그것을 감안하여 정해진 세율 같아요.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운 처지에서도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성전세를 나고 있는 것이 되죠.
성전세는 어쩌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라는 점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예배에 대해 수없이 들었지만 우리가 여전히 착각하는 것이 있죠.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심을 고백하고 그분이 나의 출발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보통의 제사, 종교적 예배는 나를 봐달라는 의미가 더 강하죠.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나의 모든 것이 그분으로부터 왔고, 나의 가진 것조차 그분이 주셨음을 고백하는 것이 기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 내미는 복채가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작은 표현이 되는 것이죠.
헌금 이야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돈 이야기에 민감하니까요.
게다가 민감한 것들은 많은 착각과 오해를 불러일으키죠.
자신의 생각이 많은 주제에 대해서는 우리 나름의 철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더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놓고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 재물이 된 지 오래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것이죠.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그분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의 육체에서부터 가진 지식과 재능까지,
그리고 시간과 환경, 삶의 모든 과정과 이룬 결과까지도 그분의 손에 있음을 고백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죠.
나의 나됨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우리가 하는 고백입니다.
나의 연약함도, 훌륭함도, 나의 가진 것도 없는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이죠.
이 고백이 우리가 하는 예배의 근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 앞에서 기도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죠.
이 고백이 없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들을 필요도 없고, 그분에게 내 삶을 맡길 필요도 없습니다.
그 고백이 없다면 감사도 없고, 구원도 없죠.
이제 그 고백의 첫 다짐이 예배라면, 그 고백의 첫 행동은 헌금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보여줍니다.
오래전, 유일한 헌금 설교를 하면서 우리가 드리는 것은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십조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1/10은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 9/10는 내 것이라는 십일조 정신은 없다고요.
십일조 정신의 근간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9/10를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것이죠.
내가 1/10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9/10를 주신 것이 십일조 정신입니다.
이제 그 9/10를 받아 우리는 거룩하게 사용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나의 것을 드리고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헌금의 의미이고 십일조의 정신이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시고, 전부라는 것, 나에게 있는 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그리고 그 인정 아래 예배하고, 또 헌금하시나요?
아니면 무슨 모임 회비 내듯 하시나요?
우리의 재물이 잘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헌금으로도 잘 쓰이고, 삶에서도 잘 쓰였으면 좋겠어요.
헌금은 그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신 것을 감사해서 기꺼이 그중 작은 것을 내놓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탕감해 주지 않았던 비유를 기억하시죠?
그가 비유에 등장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탕감받고도 작은 것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데 있습니다.
나의 것을 다 드리면 하나님은 대부분을 돌려주십니다.
나를 드리면 나를 오히려 찾아주시죠.
바울이 자신의 학식을 다 버리고 주님께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그의 학식을 더 빛나게 하시고 쓰십니다.
그것이 십일조 정신이고 헌금의 정신이에요.
그래서 다시 받은 재물을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더욱 귀하게 사용하고, 내 것이라고 흥청망청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선교비처럼 사용하는 삶의 재물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신 시간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감사하면 감사하는 대로 시간을 돌려받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께서 그 시간을 귀하고 복되게 하셔서 우리에게 돌려주십니다.
그런 하루를 사세요.
나에게 귀중한 시간을 빌려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것처럼, 그분이 맡기신 순간순간을 사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야 우리의 하루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출발이 바로 예배가 되죠.
그분이 창조주시고, 나의 모든 것이라는 출발에서 말입니다.
그런 아름답고 복된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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