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묵상53 - 안식은 나만의 안식이 아닙니다.(느헤미야서 10:31)

2020. 7. 4. 06:34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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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고백을 마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서약을 하는데요. 
서약의 내용이 30절부터 시작됩니다.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면, 30~31절은 다짐의 기본 정신을 담고 있는 맹세이고요. 
32절 이하의 부분은 구체적인 행동을 정한 규례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30~31절의 맹세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어쩌면 규범화되어 있는 교회의 철칙처럼 받아들이는 내용이죠. 
어제는 그 맹세 가운데 한 가지를 묵상했고요. 오늘은 나머지 하나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먼저 다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이 2가지 맹세, ‘믿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시키지 않겠다’와 ‘주일에는 일하지 않겠다’는 말은
과장되거나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 아닙니다.
저는 이 말이 단 한 글자도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맹세를 부정하거나 부인하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오늘날 이 두 맹세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이 있을 뿐이에요.

그러나 다만, 이 맹세에 대한 획일적인 해석과 잘못된 견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못 해석하고 받아들인 점이 오히려 이 맹세를 맹탕으로 만들어 버리는 주범이 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어제는 믿지 않는 이들과의 결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이방인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말입니다.
이방인을 문제점으로 보고 접근하는 맹세가 아니라 나의 자세를 중심으로 한 맹세라는 사실을 말이죠.

이제 주일에 일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떨까요? 
어떤 이들은 주일에 가게도 가지 않고, 사고파는 일, 심지어 설거지도 하지 않습니다. 
일이니까요. 
이스라엘의 모습이 현재에도 그렇습니다. 
‘주일은 쉽니다..’ 이런 푯말이 붙으면 대단한 신앙처럼 여겨지죠. 
자신의 벌이 하루를 포기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주일 성수, 혹은 주일을 안식하는 이 규정은, 우리가 쉽게 눈치채지 못할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31절을 다시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31   "이 땅의 백성이 안식일에 물건이나 어떤 곡식을 내다가 팔더라도, 안식일에나 성일에는, 우리가 사지 않는다. 일곱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육 년이 지난 빚은 모두 없애 준다."

7일로 반복되는 안식일, 그리고 7년으로 규정된 안식년에 대한 말씀이죠. 
안식일에 사고팔지 않는다는 말씀은 읽는 그대로입니다. 
그다음 구절은 일곱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은 없애 준다고 맹세했습니다. 
이것을 잘 살펴보면, 자신에게 향한 맹세가 아닙니다. 
땅을 쉬게 한대요. 
물론 그것은 자신이 일을 안 한다는 문학적 표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요? 
그러니까 제 말은 지금 안식일에 관한 규정은 자신이 쉰다는 의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뭘까요? 
아시겠어요? 
네.. 다른 사람들을 안식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사고팔지 않는 것은 내가 사고팔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쉬게 하는 의미가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주일에 일하지 않는다의 의미가 어떻게 변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안식은 나만의 안식이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일을 떠맡기고 고생하게 하면서 자신은 편안히 쉰다면 어떨까요? 
가령, 사기를 쳐서 누군가의 피 같은 돈을 빼돌려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자신은 휴양지에서 떵떵거리며 쉼을 갖는다면 말이죠. 
그것이 안식일까요? 
안식의 개념을 우리는 쉽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편안한 것으로 말이죠. 
그런데 나만 편하다고 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가족이 편안해야 내가 편안해지고, 내 이웃이 편안해야 나 또한 편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안식은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타인의 안식이 곧 나의 안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우리 공동체 가족에게 아픔이 있는데 제가 편안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공동체의 기쁜 소식이 제게 가장 기분 좋은 소식이 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안식에는 공동체 정신이 있어서 그래요. 
지금 이스라엘은 그것을 맹세하고 있는 겁니다. 

주일에 안식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남에게까지 안식을 주는 일입니다. 
내가 잠시 멈춰 서서 이웃을 바라보는 일, 이웃의 신음을 듣는 일, 그리고 돕는 일, 그것이 안식의 근본입니다. 
우리 일주일에 한 번쯤은 나를 잠시 멈추고 우리 공동체, 이웃을 바라보면 좋겠어요. 
그들의 소리를 듣고 돕는 일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안식에 이르게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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