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30. 07:25ㆍ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1900년대 초, 미국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는 산업재해와 관련된 오랜 보험회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1931년, 산업 재해 예방(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을 하는 출간 했는데요. 그는 과학적 접근이라는 부제를 달아 자신이 경험했던 재해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적어 놓았습니다. 그가 경험했던 산업 재해 현장에서는 한 가지 법칙이 존재했는데요. 그것은, 산업 재해로 인해 1명의 사망자가 나오기까지, 그와 같은 계통의 위험한 재해가 29번 정도 이미 존재했었고, 또 그 29번 이전에는 경미한 사고들이 300번 정도 발생했었다는 통계였어요. 그러니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그저 쉽게 넘어갔던 300번의 사고가 조금 더 큰 사고로 이어졌고, 이 또한 29번이 벌어질 때까지 경고로 여기지 않는 순간, 심각한 재해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후, 산업 현장에서 하나의 법칙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를 하인리히 법칙, 혹은 1:29:300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는 비단 산업 현장의 문제만은 아니죠. 어떤 큰일이 일어나기까지 우리에게는 전조증상들이 있습니다. 큰 병에 걸린다거나, 관계가 깨진다거나, 혹은 어떤 체계가 무너지는 것에는 늘 전조증상이 있죠. 별것 아닌 것처럼 규칙적이지 않은 식사를 하거나 몸의 가벼운 이상에 대해 무시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친군데, 가족인데 그래도 되겠지’하는 무관심과 무신경의 타성에 젖어 있을 때 우리의 관계들은 무너져 가죠. 우리의 작은 습관들이 삶의 패턴들을 무너뜨리고, 믿음과 신뢰를 망가뜨리는 것을 우리는 쉽게 봅니다. 한 번에 무너지지 않아요. 큰 것 한 방으로 쓰러지는 경우는 없어요. 언제나 작은 경고들이 주어지고, 언제나 작은 전조현상들이 어김없이 나타나죠. 그때, 우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지혜라는 것이 어쩌면 별것 아닌지도 몰라요. 작은 경고에 반응하는 것,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미리 움직이고, 준비하고, 알아보는 것, 그것이 지혜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고백하죠. 주님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셔서 주의 영으로 타이르셨다고요. 그러고 보니 수많은 선지자들이 성경에 등장하고, 하나님을 알리고 그의 마음을 전하는 이들이 가득합니다. 성경은 그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기에 그 말씀이 크게 들리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심으로는 그 선지자의 말씀이 아마도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였겠죠. 그들의 경고는 이스라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의 경고는, 이스라엘에게는 으레 있는 경고, 마치 지나가는 사이렌 소리처럼 듣고도 별 관심이 없는, 무엇 때문에 울리는지도 모르는 그런 경고였을 거예요. 자신에게 문제가 되지 않으니 경고가 필요 없었고, 자신이 갈급하지 않으니 남의 소리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겠죠.
그런데 그런 무관심과 무책임과 무연합이 우리의 전조증상입니다. 남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남의 말이 들리지 않고, 내 고집이 더 세지고, 내 목소리가 더 커지고, 혼자 있기를 바라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영이 무너지는 전조증상이라면 어떨까요? 나누기 싫고, 말하기 싫고, 함께하기 싫고, 오히려 나 홀로 모든 것을 하고 싶을 때, 그때가 주님을 떠나는 전조증상이라면요? 그래서 말씀이 들리지 않고, 성경보다 다른 것이 더 진리 같다면요? 말씀으로 인해 얻어지는 지혜보다 다른 사람 말에 더 귀 기울이고, 다른 진리에 더 마음을 주게 된다면요?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남에게 지적질하는 것이 더 좋고, 나를 쳐서 복종시키기보다 남 탓하며 사는 것이 내 안에서 무수히 벌어진다면요?
관계는 싸워서 깨지는 게 아니에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며 차츰 연락이 없어서 깨지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말이죠. 그때, ‘지금 내가 관심이 없구나’ 생각해 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연락을 하는 사람이 행동하는 사람이죠. 주님의 말씀에, ‘그래, 내가 감사하지 못했구나’ 이것을 느끼는 사람이 가장 순종하는 사람이고요. ‘그래, 지금 해야지’ 이런 사람이 가장 먼저 가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요.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마치 300번처럼 말이죠. 그러나 아무리 300번, 3000번이 있어도, 그것을 귀 기울이고 경고로 받지 않으면 29번의 문제가 생기고, 마침내 1번의 큰 사고가 나고 말아요. 우리의 평안은 아무렇지도 않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의 평안은 주님의 말씀이 경고로 들릴 때입니다. 주님의 가이드가 작동할 때가 평안할 때입니다. 그 가이드를 잘 듣고 인정하고 따를 때 우리에게 평안이 있는 거예요. 오늘도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의 말씀을 경고로 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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