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묵상46 - 은혜의 무게는 감사에서 나옵니다.(느헤미야서 9:16~21)

2020. 6. 26. 06:34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반응형

오늘 말씀은 어제 말씀의 반복처럼 들립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억하는 과거의 일들이 나열됩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말씀이 반복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어제의 말씀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한 기억이었다면, 오늘의 말씀은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에 관한 것인 듯해요. 그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오늘 말씀의 중심에는 우리들의 불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불만을 터트리죠. 그들에게 광야는 해방의 자리였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고, 자유를 얻은 자리였죠. 그러나 그들은, 아니 우리는 오히려 광야를 불평의 자리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자유를 얻었지만 오히려 자유를 더 불편해합니다. 그런 것 있죠? 우리에게 자율성이 보장되면 더 나태해지고 마음대로 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억압하고 압제하여서 통제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갖는 모습 말입니다. 이것을 노예근성이라고 말하죠.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은혜를, 사랑을, 돼지의 진주 목걸이로 만들어 버리는 근성이죠.

은혜의 무게는 감사에서 나옵니다. 아무리 주님의 사랑이 크고, 넓어도 그 사랑을 인정하며 감사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은혜는 이미 은혜가 되지 못합니다. 아무리 먹을 것이 많아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면 그것은 썩어 냄새나는 쓰레기가 될 뿐이죠. 19절 이후의 고백을 보면 미묘한 변화를 읽게 됩니다. 이런 것이죠. 구름 기둥은 하나님께서 광야의 백성들을 인도하는 길잡이였습니다. 불기둥은 밤에 이들을 지키는 불처럼 사용되었죠.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 구름 기둥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구름 기둥이 뜨면 길을 가야 하니까요. 여행도 가기 싫은 사람에게는 귀찮은 일이 되죠. 그들의 고백의 중심은 이제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 구름 기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발견하는 것이죠. 그것이 일상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일도 감사로 받아들이면 귀한 것이 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니까요. 그것을 20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선한 영을 주셔서, 그들을 슬기롭게 하셨습니다.”라고요.

만나를 주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어떤 맛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먹거리임에는 틀림없죠. 그 만나는 공평했고, 조건이 없었습니다. 나이나 성별에서부터 믿음과 성품에 이르기까지 차별이 없었습니다. 착하든 악하든, 좋든 나쁘든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주어졌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렇게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그 은혜와 사랑이 차별 없는 온전한 은혜와 사랑이 되려면 해결되어야 할 것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우리의 반응입니다. 감사하게 먹으면 공짜로 주어지는 차별 없는 사랑이고요. 감사를 잃으면 매일 똑같은 메뉴의 지겨운 쓰레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부족함이 없었다고 고백하는데요. 돌아보면 우리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어렵게 이 자리까지 왔고, 힘겹게 버텨왔지만 돌아보면 늘 채워주셨고, 늘 인도해 주심을 느끼는 것, 그것이 선한 영이고, 감사입니다. 많은 이들이, "수많은 재산을 모았는가?"에 자신의 인생의 성패를 논하지만 오늘 고백하는 이들은 헐벗지 않음에 감사하고, 크게 해를 당하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아주 작은 일에 감사하는 삶의 고백이죠. 그렇게 은혜는 감사에서 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선한 영입니다. 예배가 예배 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진실한 마음이고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감사입니다. 감사가 은혜를 풍성하게 하고, 감사가 사랑을 뜨겁게 하죠.

오늘도 우리는 감사의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고백처럼, 작은 일에서부터 감사를 찾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의 감사로 하나님의 은혜가 빛나는 하루이길 빕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