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묵상14 - 기도했다고 쉬워지는 일은 없습니다.(느헤미야서 2:19~20)

2020. 5. 19. 06:43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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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미 10절에 등장했었는데 그때 묵상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잠깐 소개해 보겠습니다. 산발랏은 호론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호론은 벧호론을 말하는 것 같아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죠. 그는 사마리아의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었던 사실을 기억하시죠? 남유다가 바빌로니아로 인해 나라를 잃기 훨씬 전에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했죠. 멸망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질 정도로 북이스라엘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요. 이는 앗시리아의 식민정책이 민족말살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앗시리아는 그렇게 잔혹한 식민정책을 펴며 한때 중동지역을 주름잡았는데요. 그들도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후에는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로 이어졌죠. 앗시리아 당시 북이스라엘은 총독 체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느헤미야 당시 이미 앗시리아는 멸망한 후죠. 그런데도 사마리아의 총독이 있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앗시리아 이후에도 바빌로니아나 페르시아는 계속해서 총독 체제로 북이스라엘 지역을 통치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산발랏은 폐허가 된 이스라엘 땅의 통치를 맡고 있었던 사람이었죠.  

도비야는 암몬 사람이라고 되어 있네요. 암몬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땅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요르단의 수도 암만이죠. 그 또한 그 지역의 총독으로 있었던 모양이에요. 암몬은 이스라엘과 밀접한 관계입니다.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요? 암몬 족속의 시작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으로부터 시작하죠. 가깝지만 또한 껄끄러움이 있는 그런 관계 정도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이 멸망하고는 수백 년 동안 그 주변 땅은 사마리아를 지배하는 이들과 암몬과 같은 주변 나라들이 그 지역을 활보했겠죠. 그렇게 주인 행세를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나라를 세우려 하니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겠죠. 그들의 방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대목이 있어요. 내가 기도했다고,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응답하셨다고 일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니 반대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이 땅에서 방해를 더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하려면 그만큼 많은 저항을 받습니다. 사랑을 하려고 해도, 가진 것을 나누려 해도, 은혜를 베풀려 해도 방해를 받아요. 내가 나누면 당연히 고마워하겠지, 내가 은혜를 베풀면 당연히 감사해하겠지, 이런 생각은 착각입니다. 오히려 다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반응들을 대하기 십상이죠. 뿐만 아닙니다. 꼭 해야만 하는 일, 옳은 일, 정의로운 일들을 할 때 더욱 방해가 심합니다. 

기도했다고 저절로 되지 않아요. 하나님의 응답은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하도록 나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죠. 두려워 말라, 걱정 말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런 두려움이 없고, 걱정거리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두려운 일이 생겨도, 걱정거리가 있어도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걱정을 뛰어넘는 용기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늘 함께하시겠다고 하시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여러 방해를 받을 거예요. 말씀을 묵상하려고 해도, 사랑과 긍휼, 자비와 선한 행동을 하려고 해도, 정이 똑 떨어질 만큼 저항을 받을지 몰라요. ‘내가 다시 하나 봐라~’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의 방해가 우리를 공격할지도 몰라요. 본래 그래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기도했다고 쉬워지지 않아요. 다만 기도한 사람만이 용기가 생기고, 기도한 사람만이 확신으로 멈추지 않아요. 기도한 사람은 상황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니까요. 오늘도 세상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하여 사는 하루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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