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서묵상09 -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낍니다.(느헤미야서 2:4~6)

2020. 5. 13. 06:37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반응형

어제 느헤미야가 현재를 어떻게 살았는지 묵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 묵상이 증명되는데요. 왕은 단순히 느헤미야를 도와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언제쯤 돌아올 것인가를 묻죠. 이는 그를 돕는 것을 넘어 아낀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이렇게 왕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그가 어떻게 살았을까요? 

믿음의 사람은 매력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책을 옆구리에 늘 끼고 다녀도 그가 매력적이지 못하면 오히려 믿음의 행위들은 역작용이 나겠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면 예수의 제자인 줄 모든 사람이 알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한마디로 매력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든 다른 사람이든, 인종이나 신분이 달라도, 심지어 나의 원수까지도, 나의 지배자, 혹은 핍박하는 이들에게도 그리스도인은 매력적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라’ 말씀하셨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느헤미야의 기도예요. 그는 왕이 자비를 베풀며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기도한 것이죠. 그런데 저는 그 기도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물론 알 수 없겠죠.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정황상 이 기도가 감사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일단 왕의 호의에 무엇을 말할까 하고 기도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 짧은 순간에 자신의 바람을 말하긴 힘들죠. 그보다는 그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설명해 볼게요. 2장 본문의 시작은, 때가 언제인지를 기록하고 있어요. 어제 언급했듯이 니산월이라고요. 굳이 언제를 언급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것은 그가 고향의 소식을 전해 듣고 하나님께 서원의 기도를 하기 시작한 이후 걸린 시간을 말하고 싶었겠죠. 이는 그가 4개월 동안 기도해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뜻이겠죠. 이를 다시 뒤집어 말하면, 느헤미야는 디데이를 정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왕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죠. 4개월 동안 잘 지내다가 그날따라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왕에게 나간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그날을 디데이로 삼았다는 의미 아닐까 싶어요. 

이를 종합하면 느헤미야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고요. 그리고 왕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는 모험이죠. 노예가 어찌 고향에 가겠다는 말을 합니까? 게다가 생각해보면 신하가 왕 앞에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 자체가 죽을 죄인지도 모르죠. 어찌 노예가 왕 앞에서 인상을 찡그립니까? 이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고, 그리고 죽을 각오를 한 모험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모험이에요. 이미 말씀드린 대로, 기도하면 될 줄로 믿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이룬 것처럼 믿고,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죠. 그것이 용기가 되고, 그것이 하나님을 일하게 만든다고 말씀드렸죠? 그 기도를 느헤미야가 한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그렇게 나오니 느헤미야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마도 순간,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구나 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겠죠.

이것이 얼마나 치밀한 계획이며, 4개월 동안 스스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해 왔는지가 그다음에 드러나는데요. 왕이 언제쯤 돌아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느헤미야는 거침없이 언제쯤 될 것을 말하죠. 이는 이미 그가 그 시간을 계산하고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하면 4개월 동안 그가 기도할 때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고 구체적인 상황까지 계획을 했다는 뜻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해하지는 마세요. 내가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기도했다면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을 펼치시는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나의 할 일을 믿고 하라는 뜻이에요. 기도하고는 잊어버리는 것, 알아서 되겠지 하는 마음,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 제목을 내놓고는 자신은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기도했다면 그 기도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지금부터 나를 그 기도대로 맡기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요.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내 마음을 확정하세요. 그리고 받은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걸어가세요. 이루어질 것을 기정 사실화하고 계획하고 생각하고 꿈을 꾸세요. 그때 하나님의 일하심이 눈에 보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반응이 우연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 때문임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용기가 났을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아니 이처럼 순순히 일어나는 일, 그 왕의 반응에 오히려 겁을 먹을지도 몰라요. ‘오늘 왕이 왜 이러지?’ ‘뭘 잘못 먹었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줘도 못 먹어요. 기도의 능력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들 하나하나가 기도의 결과임을 느끼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인정하게 되죠. 그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없이 기도의 결과는 없어요.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낍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