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2. 06:30ㆍ묵상하는말씀/느헤미야서묵상
니산월이 되었습니다. 니산월은 성경상 유대력으로 1월이고 태양력으로는 3~4월입니다. 1장에서 느헤미야가 고향땅을 위해 기도를 시작한 때가 기슬로월(키슬레브)라고 했는데요. 기슬로월은 9월(태양력으로 11~12월)이니까 기도를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난 어느 때인 셈이죠. 느헤미야는 아마도 평소와 같이 술 따르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왕이 느헤미야에게 말을 거는 겁니다. 왕궁에서 노예는 그저 물건 정도의 취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왕이 신하도 아닌 노예에게 먼저 말을 거는 건 이상한 일이죠. 백번 양보해서 아무리 노예지만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사람이니 말을 걸 수는 있겠다 치자고요. 특별히 술을 따르는 관리이니 원하는 술 정도 명령할 수는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지금 왕이 거는 말은 그런 수준의 명령이 아닙니다. 느헤미야의 안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그것은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입니다. 게다가 노예의 안색이 좋든 안 좋든 왕으로서 무슨 상관입니까? 그에게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말이죠. 그런데 왕은 느헤미야의 안색을 살피고 무슨 일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아낙사스다 왕에게 느헤미야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게다가 4절에는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까지 묻네요. 이는 자신이 도와주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죠. 이 장면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왕과 노예 사이, 아닥사스다와 느헤미야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느껴지십니까? 친구관계에도 관심이 없으면 안색 운운 안 합니다. 왕은 걱정을 하며 묻고 있어요. 심지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도 찾습니다. 이는 보통의 관계, 아니 인격적이고 신뢰의 관계가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관계가 형성되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아닥사스다 왕이 친절하고 세심한 왕이라는 전제죠. 그래서 찾아봤어요. 아닥사스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아닥사스다 왕은 일반 문헌에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혹은 롱기마누스)로 기록된 인물이네요. 누군지는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인물평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매우 나약하고 신경질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성품의 폭군이라고 되어 있네요. 이쯤 되면 첫 번째 전제조건은 성립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조건은 뭘까요? 그것은 그런 폭군조차 녹여버리는 느헤미야의 성실함과 신실함이 아닐까요?
나라를 잃고 노예로 끌려와 지난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성실함은 사치입니다. 죽지 못해 살고, 억울함으로 사는 것이 일반적이죠. 때론 두려움에, 때론 어쩔 수 없어서 수행하는 삶이 고작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그리고 다른 이들의 마음을 녹이고 믿게 할 만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면 이런 느헤미야의 모습과 흡사한 인물이 떠오르죠. 바로 요셉입니다. 나라를 잃은 것도 아니고 빚을 진 것도 아닌, 억울하게 끌려와 노예로 사는 그였지만 그는 그 시간, 그 현재를 성실하게 삽니다. 그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 바로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거였죠.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를 평가하고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닙니다. 주어진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이죠. 현실에 낙심하고, 현재를 평가하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현재 처지를 한탄하고, 과거를 묵상하고, 미래에 대한 공상에 빠져 현실 도피를 하는 모습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아요. 그렇다고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현실을 얼마나 잘 평가하느냐가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얼마나 잘 살아 내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가 결정되죠. 주어진 현재를 가장 기쁘게 살아내는 이에게 꿈꾸는 미래가 다가옵니다. 요셉에게 왕의 꿈을 해몽하는 일이 벌어지리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감옥에서 낙심하여 머리 처박고 살지 않았어요. 그의 재능을 발휘하며 다른 이들의 마음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미래를 밝히죠. 느헤미야 또한 그렇습니다. 왕이 자신의 안색을 살피며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을 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마도 그가 낙심하여 그의 현재를 대충 살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죠.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주어진 현재는 내가 감당해야 할 사역입니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하세요. 오늘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세요. 매 순간 진실하세요. 그 성실함과 진실함이 내가 원하는 미래를 가져옵니다.
'묵상하는말씀 > 느헤미야서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헤미야서묵상13 - 선한 것은 나눌수록 커집니다.(느헤미야서 2:17~18) (0) | 2020.05.18 |
---|---|
느헤미야서묵상12 - 내가 기도했다는 것은 나에게 맡겨진 사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느헤미야서 2:13~16) (0) | 2020.05.16 |
느헤미야서묵상11 -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면 내 마음을 준비하세요.(느헤미야서 2:11~12) (0) | 2020.05.15 |
느헤미야서묵상10 - 기도에 응답받고 싶다면 확률을 높이세요.(느헤미야서 2:7~10) (0) | 2020.05.14 |
느헤미야서묵상09 -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낍니다.(느헤미야서 2:4~6) (0) | 2020.05.13 |
느헤미야서묵상07 -혼자가 아닙니다.(느헤미야서 1:10~11) (0) | 2020.05.11 |
느헤미야서묵상06 -좋은 것을 선택하세요.(느헤미야서 1:8-9) (0) | 2020.05.07 |
느헤미야서묵상05 - 나의 회개가 변화의 시작입니다.(느헤미야서 1:6~7) (0) | 2020.05.06 |
느헤미야서묵상04 - 나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요?(느헤미야서 1:5) (0) | 2020.05.05 |
느헤미야서묵상03 - 내가 할 수 없음을 느낄 때, 곧 무력(無力)할 때 믿음이 자랍니다. (느헤미야서 1:3~4) (0) | 2020.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