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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역대기상묵상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행동의 위대함보다, 어떻게 해서, 어떤 마음으로 그 행동이 나왔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역대상 23:1-2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행동의 위대함보다, 어떻게 해서, 어떤 마음으로 그 행동이 나왔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1 다윗은 나이를 많이 먹어서 늙었을 때에,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2 다윗 왕은 이스라엘 모든 지도자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았다.
3 서른 살이 넘은 레위 사람의 인구를 조사하였는데, 남자의 수가 모두 삼만 팔천 명이었다.
4 이 가운데 이만 사천 명은 주님의 성전 일을 맡은 사람이고, 육천 명은 서기관과 재판관이고,
5 사천 명은 문지기이고, 나머지 사천 명은, 다윗이 찬양하는 데 쓰려고 만든 악기로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이다.
6 다윗은 레위의 자손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를, 족속을 따라 갈래별로 나누었다.
7 게르손 족속에는 라단과 시므이가 있다.
8 라단의 아들은 족장 여히엘과 세담과 요엘, 이렇게 세 사람이다.
9 시므이의 아들은 슬로밋과 하시엘과 하란, 이렇게 세 사람이고, 이들 모두가 라단 가문의 족장이다.
10 또 시므이의 아들은 야핫과 시나와 여우스와 브리아이다. 이 네 사람도 시므이의 아들이다.
11 야핫은 족장이고, 그 다음은 시사이다. 여우스와 브리아는 아들이 많지 않아서, 한 집안, 한 갈래로 간주되었다.
12 고핫의 아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 이렇게 네 사람이다.
13 아므람의 아들은 아론과 모세이다. 아론을 성별하였는데, 그와 그의 아들들은, 가장 거룩한 물건들을 영원히 거룩하게 맡아서, 주님 앞에서 분향하여 섬기며, 영원히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게 하려고 성별하였다.
14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아들들은 레위 지파에 등록되어 있다.
15 모세의 아들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다.
16 게르솜의 아들 가운데서 스브엘은 족장이다.
17 엘리에셀의 아들 가운데서는 르하뱌가 족장이다. 엘리에셀에게는 다른 아들이 없었지만, 르하뱌에게는 아들이 아주 많았다.
18 이스할의 아들 가운데서 족장은 슬로밋이다.
19 헤브론의 아들 가운데서 족장은 여리야이고, 그 다음은 아마랴이고, 셋째는 야하시엘이고, 넷째는 여가므암이다.
20 웃시엘의 아들 가운데서 족장은 미가이고, 그 다음은 잇시야이다.
21 므라리의 아들은 마흘리와 무시이다. 마흘리의 아들로는 엘르아살과 기스가 있다.
22 엘르아살은 아들은 없이 딸들만 남겨 두고 죽었다. 그래서 그의 조카인 기스의 아들들이 그의 딸들에게 장가 들었다.
23 또 무시의 아들로는 마흘리와 에델과 여레못, 이렇게 세 사람이 있다.
24 이들은, 각자의 가문별로 인구를 조사하여 이름이 기록된 레위의 자손으로서, 주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스무 살이 넘은 각 가문의 족장들이다.

[BCJC 가난한 묵상]
상담관련 용어 가운데 착한아이증후군(콤플렉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소위 다른 이들로부터 착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심리적인 콤플렉스를 의미하는 말이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착하고 말 잘 듣는 것은 좋은 것이고,
착하지 않고,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은 나쁜 것으로 규정하며
타인의 판단을 절대화 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착한 행동을 해야 하죠.
그래서 어느 때는 거절해야할 때, 거절하지 못하거나,
분노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경향을 띄게 되죠.
그들은 어느 상황이든지,
어떤 문제이든지 늘 착한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착한 행동은 옳은 행동과는 대비되는 행동을 말합니다.

오늘본문에서 다윗은 또다시 인구조사를 지시합니다.
이미 이전에 인구조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은바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이번 인구조사는 사뭇 다릅니다.
왜냐하면 지난번 인구조사와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인구조사는 자신의 자랑이나,
혹은 자신을 위해 있을 도구로서 백성들의 수를 세었다면,
지금의 인구조사는 이스라엘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길 사람들을 조직화하는 인구조사입니다.

인구조사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죠.
우리는 어떤 행동에 옳고 그름의 의미를 정하려고 노력합니다.
가령,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옳은 일이고,
거절하는 것은 나쁜 일처럼 말이죠.
마치 착한아이증후군의 현상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그 선생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 보다
나의 유익을 위해라고 한다면 의미가 달라지죠.
또한 아무리 선생님의 지시라 하더라도 부당한 지시나,
반인륜적인 행동에는 ‘노’라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주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중요한 것은 인간 사회에서는 중심을 보기가 힘듭니다.
우리들 사이에 약속으로 정한 법은 행동을 기준으로 봅니다.
그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가늠하지 못합니다.
오직 행동으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죠.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으로,
그러니까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하였는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행동의 위대함보다,
어떻게 해서, 어떤 마음으로 그 행동이 나왔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거죠.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여러분은 왜 예수 믿으십니까?
아마도 이제 아름다운주님의교회 여러분들은
이 질문에 제법 명쾌한 대답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믿기는 이런 대답이 나오겠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 주님을 믿는 이유는
주님을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이런 말을 여러분들에게 전할 때마다
저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떨림이 있어요.
연약한 우리가 조금 힘을 얻어보려고,
주님에게 복을 받고 살아보려고 예수 믿고 싶은데
목사님은 그런 말을 하지도 못하게 하신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하시는 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저는 단언컨데
예수 믿으면 복을 누린다는 사실을 진리처럼 믿고,
그렇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그분의 제자가 되면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축복하시며,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제가 어버이날이었죠.
지난주, 미리 어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제 어머니는 올 5월, 생신이 되시면 구순이십니다.
꽃을 사들고 찾아뵙고, 이제 이가 시원치 않으셔서
제대로 못 드시지만
그나마 맛난 것도 사드리고 왔어요.
왜냐하면 어머니니까요.
아들이 변변치 못해 어머니 잘 못 모시지만
그래도 어버이날은 아들이 모셔야죠.
근데 돌아오려 나서는 길에 어머니는
주머니에서 꼬깃한 돈을 꺼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는 것이 내 기쁨이니까 마다하지 말고 받으라'는 말씀과 함께 말이죠.
어머니 집에만 가면 저는 도리어 받고 옵니다.
위로를 드리려 갔는데 위로 받고 오고,
사랑을 드리려고 왔는데 사랑 받고 오죠.
어머니는 그러십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제가 어머니 집에 가는 것이
무엇을 받으러 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비록 받고 오지만, 그것이 틀림없는 사실이고,
또 저를 위한 일이 되지만,
그렇다고 제가 어머니를 찾아뵙는 것이
저의 유익만을 위한 것라고
뻔뻔스레 말하는 것은 좀 아니잖아요.
저는 어머니를 위해 가는 것이니까요.
그러고 싶으니까요....
비록 드리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많아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똑같은 것 같아요.
우리가 그분을 믿는 이유에 대한 대답도 이와 똑같은 것 같아요.
그분을 믿는 것으로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고,
그 때문에 우리는 훨씬 많은 것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하나님 믿는 이유가
받기 위해서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우리를 사랑하셔서 축복하시고, 주시기 위해 기다리시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를
다 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우리가 그분께 가는 마음은 우리의 것을 그분께
드리려고 가는 것이어야 하죠.
비록 드리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많아도 말이죠.
우리가 그분을 믿는 중심은
그분의 나라에 내가 일조하려는 뜻이어야 하죠.
비록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피해가 되고,
도리어 도움만 받는 처지일지라도 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렇게 한번 기도해 보실래요?
“하나님, 제 마음을 드립니다.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할 힘도, 능력도 없지만 언제나 주님을 품고, 주님의 뜻을 사모하는 이 마음을 주님께 오늘 드립니다.”

여러분의 행동보다 여러분 안에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말보다 여러분이 품은 의도가 더 중요해요.
하나님을 품은 마음이 온전한 행동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닮은 마음이 옳은 행동을 하죠.
오늘도 마음의 제사로 시작하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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