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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역대기상묵상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불편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역대상 27:1-22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불편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1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각 갈래에 부과된 모든 일을 하면서 왕을 섬기는, 각 가문의 족장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서기관의 수는 다음과 같다. 그들은 한 해에 한 달씩 번갈아 가며 근무를 하였는데, 한 갈래는 이만 사천 명씩이다.
2 첫째 달에 복무할 첫째 갈래의 지휘관은 삽디엘의 아들 야소브암이며,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3 그는 베레스의 자손으로서, 정월에 복무하는 모든 부대 지휘관의 우두머리이다.
4 둘째 달에 복무할 둘째 갈래의 지휘관은 아호아 사람 도대이며, 그 갈래의 부지휘관은 미글롯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5 셋째 달에 복무할 셋째 갈래의 지휘관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6 바로 이 브나야가 서른 명의 용사 가운데 하나로서 서른 명을 지휘하였다. 그의 아들 암미사밧은 그 갈래의 부지휘관이다.
7 넷째 달에 복무할 넷째 갈래의 지휘관은 요압의 동생 아사헬이다. 그의 아들 스바댜가 부지휘관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8 다섯째 달에 복무할 다섯째 갈래의 지휘관은 이스라 사람 삼훗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9 여섯째 달에 복무할 여섯째 갈래의 지휘관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10 일곱째 달에 복무할 일곱째 갈래의 지휘관은 에브라임 자손인 발론 사람 헬레스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11 여덟째 달에 복무할 여덟째 갈래의 지휘관은 세라 족속에 속한 후사 사람 십브개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12 아홉째 달에 복무할 아홉째 갈래의 지휘관은 베냐민 지파의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13 열째 달에 복무할 열째 갈래의 지휘관은 세라 족속에 속한 느도바 사람 마하래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14 열한째 달에 복무할 열한째 갈래의 지휘관은 에브라임 자손인 비라돈 사람 브나야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15 열두째 달에 복무할 열두째 갈래의 지휘관은 옷니엘 자손의 느도바 사람 헬대이다. 그의 갈래에는 이만 사천 명이 있다.
16 이스라엘 각 지파의 영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르우벤 지파의 영도자는 시그리의 아들 엘리에셀이고, 시므온 지파의 영도자는 마아가의 아들 스바댜이고,
17 레위 지파의 영도자는 그무엘의 아들 하사뱌이고, 아론 지파의 영도자는 사독이고,
18 유다 지파의 영도자는 다윗의 형 엘리후이고, 잇사갈 지파의 영도자는 미가엘의 아들 오므리이고,
19 스불론 지파의 영도자는 오바댜의 아들 이스마야이고, 납달리 지파의 영도자는 아스리엘의 아들 여레못이고,
20 에브라임 지파의 영도자는 아사시야의 아들 호세아이고, 므낫세 반쪽 지파의 영도자는 브다야의 아들 요엘이고,
21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 반쪽 지파의 영도자는 스가랴의 아들 잇도이고, 베냐민 지파의 영도자는 아브넬의 아들 야아시엘이고,
22 단 지파의 영도자는 여로함의 아들 아사렐이다. 이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의 영도자이다.

[BCJC 가난한 묵상]
한때 우리나라에 연좌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죄를 가족과 친지들에게까지 묻는 것이 연좌제이죠.
소위 삼족을 멸한다는 말이 이에 속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는
우리 헌법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대한민국 헌법 제13조에는 연좌제 금지에 관한 조항이
있을 정도입니다.

제 아무리 법으로 정해도 우리의 감정은 여전합니다.
우리의 감정으로는 부모가 원수이면
그 아들도 자연스레 원수가 되죠.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 나오기도 합니다.
불편한 집안은 대대로 불편함이 이어져 내려오고요.
한번 비뚤어진 감정은 다시 잡기가 쉽지 않죠.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자신들의 지휘관들을 세우는 이야기입니다.
군대의 우두머니와 지파의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이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면면들을 보면
거의 다 다윗이 어려울 때 그 옆을 지켰던 용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아둘람에서 시글락을 거쳐 헤브론과 예루살렘까지
함께 했던 오랜 동지들이죠.

그런데 저는 여기서 조금 특별한 이름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그 이름은 21절에 나오는 [아브넬]입니다.
다윗은 아브넬의 아들 [야아시엘]을 지파의 지도자로 세웠어요.
그런데 아브넬이 어떤 인물인가하면,
그는 한때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사울의 친위대장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앞세워
다윗에게 대항을 하기도 했죠.
그러니까 다윗에게는 원수와도 같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의 아들 야아시엘을 지도자로 세우는 겁니다.

오늘 저는 묵상을 하면서 조금 복잡한 감정에 싸였습니다.
저 같으면 못할 일 같거든요.
저를 대적했거나, 상처를 주었던 중요 인물의 아들을
곁에 두기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어도
제 감정이 그리 열리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말로는, 글로는 쉽게 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저에게 실천하라시면 머뭇거릴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아들을 볼 때마다
그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를 것 같아서요.
그리고 그때의 생각에 가슴이 아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안 보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멍하니 몇 십 분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동안 주님과 질긴 밀당을 했는데요.
가끔 져주시기도 하시는 주님이 오늘은 안 져주시네요.
제 경험상 이런 때 주님은 제게 생각을 바꾸라고 요구하실 때죠.
그리고 단순하게 누군가를 용서하는 차원의 생각에
머물러 있던 저에게 다른 차원의 생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용서를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신 것 같아요.
반대로 제게 '너가 건강해지는 방법'으로 제시하신
말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서하는 차원에서의 이야기라면 제가 좀 억울할 것 같았는데요.
반대로 제가 건강하기 위해서라면
조금 마음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건강해야 용서도 할 수 있고,
네가 힘이 있어야 용납도 가능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용서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죠.
용서는 상대방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에게 여유를 주는 행위인 거죠.
그렇다면 용서하는 것을 억울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세요.
나 자신을 위해서 이해하세요.
나 자신을 위해서 용납하고, 안아주세요.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성숙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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