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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로마서묵상

로마서묵상12]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을 믿는 것이다.”(롬4:18~25)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을 믿는 것이다.”(롬4:18~25)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어릴 적, 당시 어린 아이에게 최고의 인사는 “내가 무얼 사줄까?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이었다. 어떤 이는 나를 안고, 혹은 손을 잡고 가게 앞에까지 이끌어 먹을 것을 고르라는 분도 있었다. 그 때 늘 나의 대답은 동일했다. “집사님, 혹은 권사님 마음대로”였다. 이 후 무슨 인디언 이름 같은 별명이 생겼다. [집사님 마음대로 작은 목사]. 이런 성격은 시간이 흐르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좋은 의미로는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하는 이타적인 마음이지만, 그러나 다른 의미로 보면 늘 결정하지 못하고, 늘 남의 눈치를 보는 소심함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간혹 내게 ‘소신이 없다’는 말을 한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목사가 되고, 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이 된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소신이 부족하다. 자신도 없고, 나 자신을 위해 목숨 걸어야 하는 일도 별로 없다. 주위의 사람들은 속 터지겠지만 나는 여전히 내 자신이 추구해야할 것에 대한 소신이 없다. 다만 나에게 믿음이 있을 뿐이다. 나의 결정과 판단은 소신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온다. 소신과 믿음은 무언가를 믿는다는 데는 동일하지만 믿음의 대상에 대해서는 완전히 다르다. 소신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 판단을 믿지만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다. 간혹 나는 소신과 믿음을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나는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경험에 의해 정해진 나의 확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소신일 뿐이다.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판단이고 생각일지라도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을 믿은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그 분을 믿는 것이다.

 

 

친구 중에 지금은 미국에서 목회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대학생활 가운데 자신의 신앙을 ‘in spite of"신앙이라고 늘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라고. 나의 상식으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의하고, 나의 경험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며, 나의 생각과 느낌으로는 따를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르는 신앙, 그것이 믿음이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 경험, 판단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험과 판단은 늘 변한다. 우리의 믿음이 이것에 기초한다면 늘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하여도, 아무리 소신이 확고하다 하여도, 이미 변해버린 생각과 판단과 경험을 기초한 소신은 아집일 뿐이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하나님은 의롭게 여기셨다. 왜냐하면 그가 믿은 믿음은 자신의 소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

 

 

신념이나 소신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이 자신이다.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고, 판단이어도 그 대상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일 뿐이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나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생각과 판단을 뛰어넘는 일을 계획하신다 하여도 믿고 순종할 뿐이다. 나의 경험과 상식을 벗어나도 믿는 대상이 하나님이시기에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상황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아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원하고 기도하고 바라는 대로 환경이 열리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믿는 것은 상황이나 환경, 나의 확신이나 경험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미 나의 하나님은 나의 길과 생각보다 깊고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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