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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로마서묵상

로마서묵상09] "내가 이 자리에 지금 있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의 대가 때문이다."(롬3:21~31)

내가 이 자리에 지금 있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의 대가 때문이다.(롬3:21~31)

 

 

 

 

5월이 되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고, 홀로계신 어머니가 안쓰러운 것은 비단 어버이날이 5월에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말썽 많고, 탈 많던 어린 시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봐주기 힘들만큼 철없고 어리석었던 시절의 나를 참아주시고, 이해해 주셨던 수많은 분들, 선생님들이 기억나는 것은 비단 스승의 날이 5월에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나는 한번도 제대로 감사와 존경을 표하지 못했던 불효자다. 당신이 자리에 계실 때는 그저 아버지였고, 당신이 하시는 모든 것은 그저 아버지이기에 당연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당신이 살아계실 때 그의 나를 위한 희생을 단 한번도 제대로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쉽고 또 아쉽다. 이제 아버지가 되어 나만이 가져야하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니 그저 눈물만 나는 것은, 나 혼자 큰 것 같은 착각에 빠졌던 지난 날 나의 어리석음의 고백이고, 아버지의 희생을 퍼먹고도 배부른 줄 몰랐던 나의 뻔뻔함의 표현일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 산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 자라나는 생명은 없다. 부모의 희생 없이 성장하는 자녀도 없고, 선생님의 희생 없이 교육받는 학생도 없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모든 것은 희생을 머금고 있다.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움을 느낄 때 그 속에는 창작의 고통을 감수하며 희생한 이의 숨결이 있고, 무엇을 보며 기쁨을 느낄 때 그 속에는 자신의 손과 발, 시간의 헌신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희생의 과정이 숨어 있다. 빛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볼 수 있을 때 촛불은 자신을 태우는 희생을 한다. 은혜란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목사다. 신학 공부를 했고, 정당한 과정을 거쳐 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우리교회의 목사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하는 동역자, 함께 하는 교회가족이 있지 않고는 나는 이 교회의 목사가 되지 못한다. 선포되는 말씀은 듣는 이가 있어야 하고, 축복은 받는 이가 있어야 한다. 그 모두가 희생이다. 목사로 인정해주고 따라주는 우리 교회가족들의 희생이 감사하고, 부족한 설교를 들어주는 은혜 나누는 우리교회 가족들의 희생(?)이 나는 감사하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권리가운데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 제아무리 대가를 지불한다고 하여도 희생이 없이는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심지어 화를 내고,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것조차 희생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는 우리는 하루도 살아가지 못한다. 감사하지 아니한가?

 

나 혼자 자란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의 대가다. 내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수많은 오류와 잘못, 과오와 죄 가운데 놓여있었지만 그것을 참으시고 너그러이 봐 주시는 이의 희생이 없었다면 결코 이 자리에 서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되심이 없었다면 나는 더더욱 이 믿음의 자리에 서지 못했다. 내가 혼자 자란 것이 아니듯 나의 믿음 또한 혼자 자란 것도, 나의 능력으로 된 것도 아니다. 나의 나이가 누군가의 희생의 대가와 함께 늘었듯 나의 믿음도 그리스도의 희생의 대가위에 서 자란다. 오늘도 나는 그분의 희생 위해 서 있다. 그것이 오늘 나의 삶의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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