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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로마서묵상

로마서묵상19] "인간 죄악의 본질은 저항이다."(롬7:7~13)

"인간 죄악의 본질은 저항이다."


왜 하지 말라는 것들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까? 왜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은 더욱 즐겁게 느껴지는 것일까? 심리학에는 심리적 저항이론(Theory of psychological resistance)이라는 것이 있다. 가령 미운 3살이 대표적인 예인데, 자의식이 발달하면서 자신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일관성 있는 태도로 언제 자유가 허용되고, 언제 자유가 제한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에덴동산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받고, 에덴동산의 지배자가 된 인간에게는 허락된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락된 자유다.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자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피조물에게 있는 자유는 주어지고 허락된 자유다. 스스로 자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으시다. 그러나 허락된 자유가 자의식으로 형성되면, 다시 말해 허락된 것이 아니라 권리인 자유로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미운 세 살처럼 권위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저항감은 하지 말라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술을 부린다. 하와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 순간,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까지 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할 것의 경계를 긋는 것은 법이다. 그러나 법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해야할 일을 하게하는 힘은 아니다. 단지 경계를 그어줄 뿐이다. 오직 우리 안에 존재하는 저항은 권위에 대한 것이다. 욕심이 죄를 잉태하듯 우리의 자의식은 저항을 낳는다.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르듯 저항은 하나님에 대한 거역으로 치닫는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죄의 본질은 저항이다. 그리고 그 저항은 거역을, 거역은 영적 죽음을 가져온다.

죄의 본질이 하나님 권위에 대한 저항이듯 죄의 해결 또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에 있다. 죄의 구속은 심판이 아니라 권위다. 하나님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 회개다. 내 안에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 죄를 떠나는 것이다. 내 삶에 십자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정결이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보혈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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