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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로마서묵상

로마서묵상22] “나는 더 이상 찌질 하지 않다”(롬8:14~18)

“나는 더 이상 찌질 하지 않다”

 

 

 

우리교회가 학력격차 해소 및 지역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위해 만든 사회적기업 다림에서는 곧 교육적 부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교육적 부모 멘토링 사역이라고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부모로부터 교육적 지원을 받지 못해 공교육에서 멀어지는 미래세대들을 위해 교육적 양부모가 되어주는 사역이다. 이 사역을 계획하고 시작하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 지역균등교육센터인 다림교육에서 함께 공부하는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으면서였다. 그 어머니 말씀의 요지는 이랬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자녀의 학교 짝꿍이 구구단을 모르는데 그런 아이들을 다림에서 도와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이미 다림교육에 들어오려고 대기하는 숫자가 다림에서 교육받는 아이들 정원보다 많은 현실에서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다림교육에는 교육 과목이 언어와 상담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미적거리는 우리들에게 그 어머니가 그 아이를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맡아서 돌봐 주겠다고 나서셨다. 그 아이에게 구구단 정도만 익힐 수 있도록 돌봐주겠다는 것이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을 느꼈다. “아! 자원하는 어머니 혹은 청년들과, 교육적 부모가 필요한 아이들을 엮어서 멘토링 사역을 하면 되겠구나”

 

우리교회가 있는 지역은 서울에서 가장 부자가 많다는 강남땅 한 복판에 있다. 몇 정거장만 나가면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학원들이 즐비하다. 밤 12시가 되면 학원가 앞에 수많은 승용차들이 가득차 러시아워를 이룰 정도다. 소위 8학군지역에, 부모들의 교육열기가 대단한 지역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 학원이라고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학원은 고사하고 부모에게 기본적인 교육적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도시개발에 밀려 쫓기다시피,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소위 도시영세민들이 있다. 어떤 아이는 부모님들이 바빠서, 어떤 아이는 한 부모, 혹은 조부모 가정이어서 기본적인 교육지원을 받지 못한다. 저학년에 가장 필요한 부모와의 학습과 과제들을 하지 못해 공교육에서 관심이 점점 더 멀어진다. 물론 이들이 아프리카의 어린이처럼 굶거나 한 끼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는 아니다. 여러 지원과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교육적 지원을 받지 못해 점점 공교육에서 밀려나고 처지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학교와 멀어진 아이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교육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은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면서 상대적 차별에 대한 문제들이 현실로 드러난다. 조금의 교육적 지원과 지역에서 버림받지 않았다는 상대적 박탈감의 해소가 필요한 아이들이 이 지역에 있다. 그들을 위해 교육적 부모가 되어주는 사역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기본적 교육을 위해,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본적인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들을 입양하는 사역을 시작하려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양하신 것처럼 말이다.

 

가난의 대물림이 어쩔 수 없는 현실처럼, 우리에게도 영적인 대물림이 있다. 한사람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대물림되는 어둠의 족보가 있다. 김씨로 태어나면 김씨로 살아야하고, 한국인으로 태어나면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족보에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가 그 족보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없는 자녀가 스스로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영적인 대물림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어지지 않는다. 이 지역의 어린이들이 스스로 노력의 노력을 다하고 열심의 열심을 다해 아름답게 자랄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받지 못한 사랑, 해소되지 못한 상대적 박탈감은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단지 사랑을 주는 사람, 상대적인 이들의 도움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마치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함을 추구해도 어둠의 자녀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주님은 우리를 입양하셨다. 주님은 십자가로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인의 족보에서, 어둠의 족보에서 파셔서 의의 족보에,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을 옮겨 놓으셨다. 더 이상 종의 영에 영향 받지 않고, 자녀로 삼으신 영에 따라 살아가게 만드셨다. 우리를 입양하셔서 과거의 아픔에서 해방시키셨다. 더 이상 우리는 부모없는 자녀가 아니고, 더 이상 우리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가져야 하는 버림받은 자녀들이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돌보시는 이가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좁아터진 방에서 바깥세상을 두려워하며 숨어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집안은 더 이상 찌질하지 않으며, 우리의 족보는 더 이상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비밀이 아니다. 세상이 모두 나를 모른다 하여도 가장 크신 주님이 나를 아시고, 그분이 나의 아버지시다. 그분이 나의 백그라운드시며, 피할 바위시다. 어느 곳에서든, 무슨 일이든 나를 보증하시고 나를 위해 증언하실 분이 그분이시다. 나는 더 이상 찌질하지 않다. 

 

지역사회에서 교육적 부모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통해서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혀 있는 자녀들, 당연히 있어야할 부모의 기초적 교육지원을 받지 못해 가능성을 상실해 가는 아이들이 그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십자가의 희생이 우리를 살리는 것처럼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이 어둠의 영에서 절망하고 있는 이들을 살린다.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상속자로 입양하셔서 과거의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놀라운 주님의 사랑이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자녀인 우리들로 인해 이 땅에 펼쳐지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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