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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로마서묵상

로마서묵상21]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롬8;1~13)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

 

 

 

 

영국에 잠시 갔을 때 런던에서 맨체스터까지 운전을 한 일이 있다. 해외 면허증이 있었지만 외국에서 첫 운전인데다 생소한 자동차에, 차 또한 대형 승합차여서 긴장을 했는데 정작 나를 당황시킨 일은 차도, 운전기술도 아닌 도로였다.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차를 몰아 큰 도로에 나왔다가 대형사고를 일으킬 뻔 했다. 영국의 주행 방향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순간 역주행을 한 꼴이 된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영국에 가면 영국의 도로법을 따라야 한다. 내가 익숙한, 혹은 내가 가고 싶은 방향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지켜야할 원칙과 법이 있다. 이것을 성문법이라고 하는데 그 법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범법자가 된다. 성문법 이전에는 불문법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관습법이나 판례법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 법은 문서화 되지 않은 법으로 상식, 도리, 혹은 일상의 이치에 근거한 법이다.(나는 법 상식이 뛰어나지 못해 일반적인 선에서 법체계를 말하는 것이니 큰 틀에서 큰 오류가 없다면 전문가들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체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법이 있다. 바로 죄와 죽음의 법이다. 성문법이나 불문법들이 사람으로 주체가 되어 만든 법이라면, 죄와 죽음의 법은 우리에게 주권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이것은 법 이전의 법이고, 상식과 도리 이전의 법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법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배되는 법이다. 이 땅의 법은 질서를 만들지만 그러나 근본적 죄를 해결할 수도, 근본적 죽음을 막을 수도 없다. 우리의 윤리나 도덕이 죄를 표면적으로 나타나게 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 죄의 근본을 이길 수는 없다. 보다 더 정확한 것은 사람 이전의 법이기에 우리의 힘이나 능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는 것은 우리의 선함도, 도덕적 의도, 능력도 아니다. 이는 마치 곰이 동굴에서 가부좌를 틀고, 마늘만 먹고서, 천 일 기도를 하며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하는 이치와 같다. 판이 다르다. 나의 선함의 노력, 나의 도덕적 정결이 부족하거나 쓸모없어서가 아니다. 우리의 정결함의 노력은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열쇠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장인이 만든 수제 황금 열쇠라 하여도 그 열쇠가 다르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나 이전에 있던 죄와 사망의 법은 또한 나 이전에 계신 생명과 성령의 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기에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가령 노예의 신분인 젊은이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그것으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똑똑해도 노예고, 놀라운 능력이 있어도 노예다. 그는 열심이 있어도 노예고, 미래에 대한 꿈이 있어도 역시 노예다. 주인이 노예상태에서 풀어주기 전까지는 그는 여전히 노예다. 도망가도 그는 노예다. 물론 주인이 그를 놓아주면 너무 좋겠지만 그 주인은 불의해서 결코 그럴 마음이 없다. 이 때 다른 주인이 대가를 지불하고 그 젊은이를 산다. 그 노예를 팔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큰 대가를 지불하고 노예를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주인이 젊은이에게 자유를 준다. 이것만이 그 젊은이를 노예에서 해방시킨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다. 나의 선택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나의 선택으로 내가 노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이 나를 십자가의 핏값으로 사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한다. 그분이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택하셨다. 그러니 나에게 그분이 영이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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