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28 -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자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2025. 2. 17. 04:45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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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1:5~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가 밤중에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내게 빵 세 개를 꾸어 주게.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는데, 그에게 내놓을 것이 없어서 그러네!' 할 때에, 그 사람이 안에서 대답하기를 '나를 괴롭히지 말게.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누웠네. 내가 지금 일어나서, 자네의 청을 들어줄 수 없네'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가 졸라대는 것 때문에는, 일어나서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시 삶의 자리로 출발하는 여러분들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웃음꽃이 피고 감사의 열매가 맺어지길 기도해요.
오늘 본문은 조금 집중해서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오해가 존재하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누가복음서 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애원하는 과부의 청을 거절하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요청하는 과부의 이야기로 우리는 기억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기도는 끈질기게 요청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죠.
오늘 본문도 그와 비슷합니다. 늦은 밤에 친구에게 찾아가 빵을 달라고 하는데, 친구가 그 청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끈질기게 졸라대면 귀찮아서라도 그 청을 들어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본문이죠.
그런데 그게 오해입니다. 그것도 심각한 오해죠. 우리는 그렇게 오해한 말씀을 마치 정설인양 받아들이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디서부터 이것을 교정해야 하는 모를 만큼 안타까울 때가 있죠.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렇게 매일 묵상을 통해 우리는 새롭게 말씀을 읽을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잘못된 인식도 교정할 기회를 얻는 것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제 차근히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정독하며 잘 따라오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또'로 시작하죠. 이게 원어로는 접속사로, 이전의 말씀과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와 관계가 있다는 거죠.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비유는 기도와 관련된 것이죠.
그런데 그 비유가 오해를 삽니다. 아니 유대인들에게는 오해가 없는데, 유대인이 아닌 우리에게 오해가 생기죠. 왜 그런지 설명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렇죠. 손님이 왔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는 거죠. 그래서 친구 집에 가서 빵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좀 늦은 시간이에요. 그런데 친구가 귀찮다고 돌아가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들을 때 여러분은 선입견이 생깁니다. 기도는 내가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나의 기도를 마치 빵을 구하는 사람과 대입하죠. 그러면서 어렴풋이 '내가 구해도 안 들어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은근히 올라옵니다. 그러면서 그럴 때 내가 어떻게 하는지를 예수께서 설명해 주시는 것이라고 이 본문을 오해하죠.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그다음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졸라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는 졸라대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것이죠. 일단 '졸라대라'는 단어를 기억하세요.
이제 이것이 왜 오해인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앞서 예수께서 친구의 예를 들으셨죠?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친구에게 빵을 구할 때 그 친구가 거절한다는 이야기였죠.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묻죠. '너희 같으면 그럴 수 있겠느냐?'라고 말이죠.
자! 일단 이 말에 유대인들의 대답은 무엇이었을 것 같으신가요? 정답은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죠.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유대인들 격언에는 '그 마을에 온 손님은 온 마을의 손님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유대인들은 손님을 대접하지 않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손님을 대접하지 않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었기에 그런 비유는 타당치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진정한 의미는 이런 거죠. '우리도 그렇게 손님을 위해 빵을 달라하면 모든 것을 주거늘 하나님이라면 어떻겠느냐?'는 의미예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죠? 다르다 못해 완전히 반대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졸라댄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제가 기억하시라고 했죠? 이 말은 헬라어로 [아나이데이아(ἀναίδεια)]입니다. 이는 부정접두사 [아]와 '부끄러움', '수치심', 더 나아가 '체면'이나 '명예' 등의 뜻을 가진 [아이도스]가 합하여 생긴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원 뜻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죠. 체면이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이 헬라어 단어 [아나이데이아]는 오늘 본문에만 등장합니다. 그 말은, 이 단어의 쓰임새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죠. 아마도 이 단어를 '졸라댄다'로 해석하게 된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미 이전 구절에서 오해가 생긴다면 이 단어 또한 오해를 바탕으로 한 번역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너무 어려운 말씀을 많이 드렸죠? 거두절미하고 저의 해석을 덧붙이자면 최근 이 구절을 새롭게 해석하는 신학적 학설들이 쏟아졌습니다. 그것은 [아나이데이아]를 '졸라댄다'가 아닌, '체면이 손상되다'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해석은 이렇게 됩니다.
한 사람이 나그네를 대접한다고 하면 마을이 전부 다 나서서 돕거늘 하물며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어떠시겠느냐? 심지어 유대인의 관습을 깨고 같은 동네 사람이라고 해서 나그네 대접을 돕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우리를 도우신다.
어제 주일공동체예배에서 말씀드렸죠?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그 이름을 걸고 그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데 매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채우신다고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이 땅에서 살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게 하나님이시죠.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용서하고 용납하면 주님도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깨끗하게 하시죠. 우리가 주님의 이름에 걸맞은 일을 할 때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반드시 채우십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은 응답하시죠.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성품이고 본성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걸고 살면 주님은 당신의 명예를 걸고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빛내면 주님은 당신의 영광으로 우리를 빛내시죠. 그러니 뒷일은 걱정하지 마시고 주님의 이름을 걸고 오늘을 사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일하시고, 주님의 이름으로 손을 드세요.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자는 결코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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