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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9 - 대립을 피하세요.

누가복음서 1:17   그는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갑자기 쌀쌀한 날씨로 몸을 움츠렸네요. 오늘 아침 기온도 역시 쌀쌀합니다. 우리 옛사람은 여전히 끈질기죠. 나를 넘어뜨리려는 생각은 포기를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뒤가 아닌 앞으로 가는 중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익숙한 것들이 나의 발목을 잡아도 나는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전진하고 있음을 오늘도 기억하고 힘차게 시작하시길 빕니다.

 

어제까지 본문은 세례 요한의 탄생 예언과 함께 그와 그 가정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했죠. 오늘은 예언의 범위가 조금 더 넓어졌습니다. 그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러니까 세상을 향해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언으로 이어집니다. 그 일례로 세례 요한을 엘리야에 비유하죠. 엘리야는 유대인들에게는 잊지 못하는 선지자입니다. 가장 많은 이적을 행했던 인물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유대인의 멘토와 같은 존재죠. 그 인물과 세례 요한을 비교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례 요한의 역할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니 악한 아합 왕에게 바른 소리를 하며 대립하고 광야를 전전했던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삶은 매우 닮았습니다. 그 또한 헤롯 왕에게 싫은 소리를 하며 광야에서 청빈한 삶을 살았죠.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누가가 세례 요한을 엘리야와 비교한 것은 유대인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 구전 때문일 거예요. 메시아가 이 땅에 올 것을 믿었던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앞서 엘리야가 와서 주의 앞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이 구전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의 예언은 400년이 넘는 동안 유대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었죠. 아니나 다를까 누가는 말라기의 본문은 오늘 인용하고 있는데요. 그 인용구는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라는 구절입니다. 말라기 4장에 나오는 구절이죠.

 

오늘 저의 눈에 밟히는 구절이 이 부분이었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한다는 의미는 어떤 뜻일까요? 깨진 가정들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물론 오랜 식민지 생활과 전쟁의 여파로 깨진 가정들이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로 해석하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하죠. 우리가 어떤 외부 환경에 의해 가정이 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기 때문이죠. 오히려 더욱 끈끈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난해한 본문으로 취급하죠. 그런 난해한 본문을 해석할 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다만 오늘 아침 주신 음성이 있어요. 그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 대한민국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날 당시 유대지역은 복잡한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로마가 통치를 하는 식민국가였죠. 그런데 실질적 통치는 본봉왕, 그러니까 로마를 대신하는 총독인 헤롯가문이 지배를 했습니다. 이 헤롯은 정통 유대인이 아닌 에돔 사람이죠.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종교적 계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신념들이 있었죠. 어떤 이는 친로마적인 사람들이고, 어떤 이는 친헤롯파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민족주의자들도 있었고, 심지어 무력 투쟁을 해야 한다는 과격한 사상을 가진 이들이 있었죠. 그들은 서로를 원수처럼 여겼습니다. 곳곳에서 테러가 자행되기도 했죠. 그런데 유대 민족은 단일민족으로 유일신 사상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물론 단일 민족이라는 것이 우월하거나 옳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이것이 인종차별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생각과 사상은 서로가 같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아오게 한다는 것은 이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이 아침에 들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 대한민국은 처참합니다. 이 작은 나라가 남북으로 나뉜 것도 모자라 동서로 갈리고 이념전쟁을 하는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양극화는 극도로 벌어졌습니다. 세대 간의 분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같은 민족일까 싶을 만큼 첨예한 갈등이 만연하죠. 그런데도 이를 해소할 지도자가 없습니다. 영적인 어른도 없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오히려 더욱 이 갈등을 부추기고 있죠. 

 

나의 주장은 남을 돕기 위해 존재해야 가치가 있습니다. 나의 이념은 서로를 돕고 하나가 되기 위해 세워지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남을 깎아내리기 위해 내 주장을 펴고 편을 가르기 위해 이념을 세웁니다. 서로 다른 주장은 서로를 보완하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싸우려고 주장을 하죠. 대립을 피하세요. 부모의 마음으로 남을 바라보세요. 아직 어린아이를 돌보는 마음으로 이웃의 의견을 들으세요. 주님을 알고 그분의 지혜를 아는 자가 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더욱 여유로운 마음을 품어야 하죠. '바보'라는 놀림에 진짜 바보가 된 양 울고불고하는 어린아이처럼 굴지 말고 이미 주님의 자녀가 된 나임을 믿고 아직 모르는 이들을 위해 관용과 포용을 허락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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