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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1 - 축복으로 인도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누가복음서 1:21~23   백성이 사가랴를 기다리는데,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도 오래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나와서도 말을 못 하니까,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환상을 본 줄로 알았다. 사가랴는 그들에게 손짓만 할 뿐이요, 그냥 말을 못 하는 채로 있었다. 사가랴는 제사 당번 기간이 끝난 뒤에 집으로 돌아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부활을 지나 새로이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우리에게 부활은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죠. 이전에 매었던 짐을 벗어던지고 이제 희망의 기대를 품고 새롭고 산길을 걷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하며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지난 본문을 잠시 복기하면 사가랴는 성전에 들어가 주의 천사와 대면을 하죠. 제사장 직을 담당했던 사가랴는 제사를 드리는 일반 백성들을 대신하여 지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가 대신 제사를 드렸던 이유는 하나님 앞에 아무나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죠. 죄를 가진 이가 주님 앞에 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은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죠. 제사장이 온전한 사람이 아닐 경우 그곳에서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부분 지성소에서 제사장은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의복에는 여러 장식물들이 달렸는데 그중에 방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발목에는 밧줄을 매었다고도 하죠.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방울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화를 당한 것으로 여기기 위함이었고, 화를 당한 사람을 들어가서 꺼내올 수 없으니 밧줄로 끌어내기 위함이었던 거죠. 그만큼 하나님과의 대면은 특별한 사람만의 직무였습니다. 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기록도 복음서에 있죠. 이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더 이상 지성소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직접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죠.

 

그런 이유로 사가랴가 나오지 않자 밖에 있던 이들이 수군거렸던 것입니다. 드디어 그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을 못 합니다. 이를 바로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보통 제사장들이 지성소에 들어가 제물을 드리고 난 후 나와서 제물을 드린 이들을 축복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축복을 해야 하는데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거죠.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지성소에서 무사히 나온 이유는 그들이 별 흠결이 없었기 때문이죠. 보통 우리는 죄가 없음을 어떤 흠결에서 찾습니다.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의미죠. 그 무결의 상태로 축복의 사람이 바로 제사장이었던 겁니다. 사가랴도 그런 사람이죠. 누가는 그가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라고 이미 설명해 준바 있죠. 그런데 주의 천사는 그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경건은 어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축복의 통로는 어떤 흠결이 없는 것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죄의 유무를 우리는 잘못을 했는지 안 했는지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축복은 죄의 판단기준과 다르죠. 축복은 주님이 일하심을 믿는가 아닌가에 달렸기 때문이죠. 나보다 더 깊으신 그분의 생각과, 나보다 더 높으신 그분의 계획을 믿는 그 믿음이 축복의 통로를 여는 열쇠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주님이 나를 통해 이루실 그 아름다운 계획을 믿는 것이죠. 그 뜻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죠. 나를 죄의 그늘에서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율법이 축복의 문을 열지는 못합니다. 축복으로 인도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기 때문이죠.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실 주님을 기대하는 것이 축복의 통로를 여는 열쇠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오늘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질 것입니다. 거부하지 마시고 아멘 하세요. 나를 통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는 여러분의 믿음 위에 주님의 축복이 흐를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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