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묵상일기 46 - 미움의 반대말은 '기쁨'입니다.

2023. 6. 20. 06:50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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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11~12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자기 동생을 쳐 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동생을 쳐 죽였습니까? 그가 한 일은 악했는데,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늘 웃음 띈 얼굴로 오늘을 사는 여러분이시길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어제에 이어 같은 본문으로 묵상합니다. 어제는 미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어쩌면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을 이끈 죄의 결과는 미움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미운 상태, 그것이 죄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미움 때문이죠. 그것이 자신의 유익을 훼손하는 것이든, 자존심이 상한 것이든, 혹은 자신만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든, 모든 결과의 뿌리는 미움이죠. 그 미움의 뿌리를 뽑고 새로운 씨앗을 뿌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화목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저는 사도 요한의 '서로 사랑'이 다르게 들립니다. 우리는 보통 사랑을 이렇게 해석하죠. 누군가를 아끼고, 돌보고, 보호하고 감싸는 것이라고요.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아요. 분명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말하는 '서로 사랑'의 근본적인 의미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누군가를 아끼고, 돌보기 이전에,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기 이전에, 그러니까 상대방이라고 하는 객체를 대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 안에 기쁨이 있어야 사랑이 가능하다고 말이죠. 그래서 서로 사랑의 시작은 바로 나의 내적인 기쁨에서 기인한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가인의 이야기가 그런 관점에서 인용된 것인지도 몰라요.

 

에덴동산이 어떤 곳이었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얼마나 좋은 곳이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압니다. 그곳은 기쁨이 가득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거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자부심? 하나님 형상을 닮은 자의 여유? 그리고 뭐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룰 수 있는 능력? 그 모든 것은 늘 기쁨 가운데 우리를 거하게 했을지도 모르죠. 그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고 말한다면 잘못된 해석일까요?

 

뭘 대단한 것을 이루고, 세상을 뒤바꿀 거대한 꿈은 제게 없습니다. 교회가 무슨 이 땅의 소망이 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이 하루를 살아도 기쁨 가운데 살 수 있다면, 기쁨을 마음속에 품고, 그것을 지키며 살 수 있다면, 그러면 세상은 어쩌면 변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전도도 필요하고 복음 전파도 필요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봉사와 섬김도 해야죠. 잘못된 관행들을 없애고, 민감한 법률에 저항도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우리에게 처음부터 주신 '기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지켰으면 합니다. 최고의 영성은 내 안에 심으신 기쁨을 지키는 것임을 알았으면 해요. 그렇게 삶에서 주님의 율법을 지키며 사는 오늘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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