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5. 06:50ㆍ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웃음꽃'입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벌레는요? '헤벌레' 너무 썰렁했죠? 아침부터 썰렁한 아재개그로 부담드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아주 작게나마 미소 지을 수 있었으면 다행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좀 더 웃고 맑은 마음으로 여러분의 귀한 시간을 보내시길 빕니다.
기독교에서 '악마', '사탄'과 같은 단어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단어는 없을 겁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거부감의 대명사와 같이 받아들여지기도 하죠. 교회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위선적으로 보이죠. 왜냐하면 악마나 사탄이 어떤 존재냐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악마나 사탄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 이들 중 대부분은 마치 제삼자나 혹은 외부의 어떤 존재를 특정하여 그 정의를 내리죠. 이는 마치, 나는 괜찮은데 다른 존재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는 의미를 주기 십상이죠. 그래서 이런 화법을 사용하는 기독교인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 또는 자신은 아무 죄가 없다는 식의 논리에 절망하기도 하죠.
저는 악마나 사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악마나 사탄이 '나'라는 존재와 연합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힘도, 아무런 소용도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악마나 사탄은 인간의 반응이 없이는 존재의 의미가 없는 존재라는 거죠. 그래서 사탄이나 악마는 무소불위의 존재도 아니고,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도 아닙니다. 또한 그들의 목숨은 그저 우리의 손에 달렸죠. 그럼에도 무서운 것은 그들은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을 통해서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기쁨과 감사를 빼먹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되죠. 우리가 그들에게 나를 내어주면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우리가 불평과 불만을 가지면 가질수록,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 안에서 나쁜 생각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미 우리는 우리 안에 나쁜 상상이, 안 될 것 같은 추측과 예상이 죄의 근원임을 묵상한 바 있죠.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대와 동시에 잘못될 것을 미리 예측하죠. 이것은 모순입니다. 엄밀하게는 위선이죠.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준비나 예비인 줄 알죠. 잘 안 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한다는 거죠. 그러면 왜 기도를 합니까? 왜 우리는 믿죠? 이 모순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이중적으로 만듭니다. 수많은 교회나 기독교인들의 현상을 보며 우리는 위선과 모순을 느끼며 조롱하지만, 사실 우리도 그런 모순과 위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며 잘 안 될 것을 생각하고, 믿는다고 외치며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히죠. 이것이 죄입니다.
물론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기대했다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낙심하기도 하죠.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우리를 우리보다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했음에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얻지 못한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낙심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다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이어가며 우리는 하나님 마음에 합하는 기도에 이르게 되는 거죠. 그 분야의 대가가 아니라고 하면 아마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도 받아들일 겁니다. 그가 나보다 뛰어나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이해할 수 있을 때 이렇게 말하겠죠. 역시 그분은 대가라고요. 그런데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나는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뜻이 그분보다 더 낫다고, 옳다고 믿기 때문이죠. 이건 기도가 아니라 협박입니다. 실패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수많은 실패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좋은 길로 이끄시는 방법들을 알아갈 뿐이죠. 이게 의로운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우리가 그렇게 걱정과 근심에 나의 시간을 내어주면 우리가 원치 않아도 어둠의 그늘이 드리웁니다. 내가 안 될 것을 묵상하고, 실패할 것을 예상하는 것, 그렇게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나 있으면 나의 마음은 점점 악마의 영토가 되어 갈 거예요.
그것을 끊기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끊기 위해 오셨죠. 이는 다름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삶이 늘 걱정스럽고 힘겹고 어렵고 절망의 순간들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주님이 주신 은혜를 발견하며 기뻐하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감사하며, 기대에 가득 찬 삶으로 바꾸시기를 원하셨죠. 그렇게 주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을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기대하라고요. 악한 세력을 물리치는 방법을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기뻐하라고요. 주님을 따르는 길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고 좋은 기분을 유지하라고 말이죠. 주님의 은혜는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곳에 모입니다. 기도하는 곳에 주님의 은혜가 있는 이유는 기도하는 마음들이 좋은 기분을 풍기기 때문이죠. 주님을 만난 것처럼,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처럼, 주님이 풍성히 채우시는 것처럼, 오늘도 좋은 기분을 유지하면 우리 곁에 성령의 임재가 흐를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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