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묵상일기 41 -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신 것에 감사하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2023. 6. 13. 06:50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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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7   자녀 된 이 여러분,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롭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날이 좋아서도 아니고, 좋은 소식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오늘을 주님께서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좋은 날입니다. 내가 기뻐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좋은 날이고요. 늘 감사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좋은 날이에요. 나의 기쁨은 내가 지킵니다. 나의 감사도 내가 세워가죠. 누구에게도 맡길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나의 영성을 소중하게 가꾸는 오늘이길 빕니다. 그 영성은 결코 배반하지 않을 거예요.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진 삶도 바꿀 만큼 큰 힘으로 나를 이끌 거니까요.

 

오늘은 미혹에 대해서 묵상해 보겠습니다. 이제는 '미혹당하지 말라'는 말이 어떤 의도로 사도요한이 쓴 것인지 감이 오시죠? 당시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뜻이겠죠. 또한 그들은 이단적인 교리, 특별히 영지주의자들을 겨냥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여기서 우리가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지주의가 이단이다'라고 못 박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영지주의라는 개념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시작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뜻이죠. 다만 언제나 그렇듯 어떤 훌륭한 교리일지라도 그것을 자신의 유익에 따라 왜곡하고 변형시키는 그룹들이 있죠. 그들에 의해 좋은 것들이 훼손되어 버리기도 하죠. 영지주의가 그런 범주에 속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지주의를 마냥 싸잡아 비판할 수는 없어요. 잘 공부한다면 그 속에 담긴 깊은 영성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영성이 지금 현재의 기독교에도 저변에 깔려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뭐든지 우리는 그 깊이를 알지 못하고 비판부터 해 버리는 경향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려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도요한은 미혹당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죠. 미혹이란 '오해하다' '속다'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때론 '방황하다' '길을 잃다'는 의미로도 쓰이죠. 그러니까 누군가의 속임에 넘어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말장난과 같은 언어 분석을 해 보겠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을 때 먼저 해야 할 일들을 몇 가지 말씀드린 적 있죠? 그중에 그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찾는 일이 있다고 했죠. 오늘,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라는 문장에서 한번 가장 중요한 단어를 찾아보시죠. 여러분은 어떤 단어라고 생각하십니까? 너무 쉽나요? 중요한 단어라는 것이 하나밖에 없죠? '미혹'이라는 단어죠. 지금 우리는 미혹에 대해서 묵상하자고 이미 공표까지 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사도요한이 이 문장을 쓴 이유, 이 문장에서 정말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혹이 아닙니다. 그럼 뭘까요? 저의 정답은 '당하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혹이라는 것은 주체가 '나'가 아닙니다. 타인이죠. 누군가 나를 미혹한다면 그것을 말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 상대방의 의지이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언제고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원천 차단할 방법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리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죠. 언제든 우리는 남 탓을 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남이 하는 것, 남의 주권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로 인해 변화하는 일들을 꿈꿔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니까요. 그래서 중요한 핵심 단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즉 어떤 미혹이 올지라도, 어떤 보이스피싱 전화가 올지라도 내가 당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사도요한 또한 우리에게 부탁을 하고 있는 거죠. 미혹하는 당사자들을 쳐 부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미혹이 몰려와도 당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거죠.

 

당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보이스피싱의 전형적인 방법은 우리의 의심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속는 지름길이죠. 우리가 속는 이유는 지금 나의 자리에 불만이 있고, 내 처지에 불평이 있을 때입니다. 늘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지금의 현실이 두려울 때죠. 기뻐하기보다는 기분 나빠하고, 좋은 것을 상상하기보다는 나쁜 결과들을 예상하는 그런 이들 앞에 미혹은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이 나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들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누군가 나를 노리고 미혹하려 한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이를 막을 어떤 특출 난 묘안도 존재하지 않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나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주신 것에 감사하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어떤 속삭임에 흔들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일 앞에서도 주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고, 그분의 임재와 개입하심을 믿는다면 어떤 유혹에도 두려워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게 진정한 은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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