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12. 06:50ㆍ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 2:8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써 보냅니다. 이 새 계명은 하나님께도 참되고 여러분에게도 참됩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렇게 한 주간이 또 지나갑니다. 금요일 아침, 여러분은 아직도 하루가 더 남았음에 힘겨우실까요? 아니면 주말을 기대하는 마음에 기쁘실까요? 똑같은 하루이지만 나의 생각의 차이는 큽니다.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오늘은 나에게 기쁨이 되기도, 혹은 지루한 시간이 되기도 할 거예요. 이시간, 좋은 것을 선택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빕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제시한 계명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계명이라고 했죠. 구약의 말씀에도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요한복음 13: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가 제시한 새 계명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옛 계명이라고 했다가 오늘은 새 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이 좀 모순이죠. 오늘 본문에 보면 '다시'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을 조금 의역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번역하는 것이 조금 더 매끄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이것이 새 계명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사도 요한은 그 다음 문장에서 설명하죠.
새 계명은 하나님께도 참되고 우리에게도 참되다고 하죠. 참되다는 뜻이 뭘까요? 원어를 찾아보니 이게 [알레데스(ἀληθής)]더라고요. 이것은 '참되다', '거짓이 없다'는 뜻으로, 아마도 [알레데이아(ἀλήθεια)]라는 말을 들어보신 분 있으실 거예요. 주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말씀 가운데 '진리'에 해당하는 단어가 [알레데이아]죠. 이 [알레데이아]가 바로 [알레데스]에서 왔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하나님이 거짓이 없고, 우리도 거짓이 없다는 뜻이 되는데요. 이것도 좀 이해가 어렵죠? 조금 풀어서 이 단어를 다시 본다면 [알레데스]는 부정적 불변사 '아'와 숨기지 못한다는 뜻의 '란다노'의 합성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다시말해, 무언가를 숨기지 못한다는 뜻이죠. 이렇게 해석하면 새 계명은 하나님도 자신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고 베풀기를 바라시는 그 축복의 성품을 숨기지 못하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참되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말씀에서 저는 서로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며 베푸시고 지켜 주심을 숨기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충만하지 않을까요? 만약 우리가 기쁨을 숨길 수 없다면, 우리에게 감사를 감출 수 없다면 어떨까요? 진정 주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우리의 모습을 회복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기쁨과 감사의 회복,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모습이라면요?
저는 이웃 사랑이 잘 안 된다고 말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상대적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억지로 남을 도우려고 애를 쓰죠. 요즘 같은 시대는 남을 쉽게 돕지도 못합니다. 도우려하다가는 차별주의자나 우월감에 찌든 꼰대가 되기 십상인 시대죠.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묻습니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하느냐고요. 저는 이미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어요. 이웃 사랑은 이웃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요. 이 말씀에 의아함과 의구심을 드러내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웃 사랑을 그러면 나의 이기심으로 하는 것인가?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죠. 그런데 아실 거예요. 남은 내가 돕는다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좋은게 아니에요. 만약 도움을 좋아한다면 도움이 없는 사랑은 원치 않겠죠. 돈만 준다고 자녀가 잘 성장하지는 않죠. 그들이 보고 듣고 그리고 영향받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것도 우리의 기뻐하는 마음 말이죠. 도와줘서 우쭐거림도, 돕는 정성이나 성의를 드러내는 것도 아닌, 그저 기뻐서 하는 그 모습과 마음에 굴복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웃 사랑은 내가 기뻐하면 되는 겁니다. 내가 감사하면 되요.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늘 기쁨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면 이웃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우리가 늘 감사함에 빠져 있어요. 그럼 지금 만나는 이들은 어떤 기분이겠어요? 돈이나 물질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요즘은 쌀 가져다 주는 것도 민폐인데요. 때마다 쌀 주고, 때마다 무슨 간식거리 나눠줍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교회 올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주변 마을에 불편함을 주지 않는 것이 더 큰 이웃사랑인지도 모르죠.
이웃을 위해 무슨 노력하지 마세요. 도우려고 애쓰지도 마세요. 그저 스스로 기쁨을 잃지 않고, 감사를 놓치지 않으면 됩니다. 나의 기쁨 때문에 이쁜 말을 하고, 나의 감사 때문에 언제나 선한 말을 하는 것만큼 큰 이웃 사랑이 없으니까요. 내 마음이 넉넉해서 다른 이의 아픔을 차분히 들어줄 수 있고, 내가 건강해서 그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니 늘 기뻐하세요. 늘 감사하세요. 늘 기분을 좋게 유지하세요. 늘 행복의 텐션을 잃지 마세요. 그것이 가장 큰 이웃사랑입니다. 내가 그것을 감추지 못할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어요. 오늘도 나의 감정은 남이 아니라 내가 다루는 하루이길 빌고, 오늘도 나의 기분은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오히려 나로 인해 주변 기분들이 좋아지는 능력의 하루를 사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https://youtu.be/FV2ke8bCpIc?si=dUHwNtyd86T0y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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