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8. 06:55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5:1~3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이 장막집에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장막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먼길을 운전했습니다. 운전을 힘들어하는 편인데 오랜시간을 운전하고나니 피곤하더라고요. 무리한 약속에 후회도 했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해서 본 광경은 참 황홀했습니다. 에머랄드 빛 바다와 푸른 하늘이 제 마음을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여유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조급함도, 껄그러움도, 근심과 걱정까지 눈녹듯 사라지더라고요. 그 기분을 간직하며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운전이지만 그 시간이 헛되지 않을 것을 믿고 감사했어요. 여러분의 오늘도 조금의 여유와 조금의 넉넉함이 오늘을 이끄는 복된 날 되시길 빕니다.
오늘 본문은 4장의 메시지가 그대로 이어집니다. 작게는 고후 4:16 이후의 말씀을 잇는 것이고, 크게는 4장 전체와 연결된 말씀이죠. 이미 묵상하셨다시피 바울은 4장에서 보물과 질그릇의 대비를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겉사람과 속 사람이라는 대립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비교하였죠.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에 대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장막집과 영원한 집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리만큼 연속적인 비유와 대비를 통해 설명하려는 바울의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려는 것이죠. 교리적으로 보면 이런 설명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이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끝이 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는 약간의 신학적 고찰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주장한 종말론에는 변화가 있기 때문이죠. 그 변화란 시간적 변화입니다. 이를 어떤 신학자는 기막힌 말로 표현하기도 했죠. 그것은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라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주님의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그러나 그분의 완전하신 계획과 섭리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런 어려운 말을 제가 한다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죠? 저는 깊은 신학적 혜안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얕지만 현재 내가 이해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일에 매진할 뿐이죠. 그런 의미로 보면 바울은 우리에게 조금 더 멀리 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지라고 권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장막집이 무너져도 염려치 말라고 하죠. 장막집이란 간단히 텐트를 말하는데요. 그가 텐트를 소재로 사용한 것은 아마도 그가 텐트를 만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테죠. 텐트를 만들면서 그가 느꼈던 것은 이 텐트가 온전한 집은 아니라는 것이었을 거예요. 광야에서 수없이, 수년 동안 텐트를 쳤지만 그것이 원하는 집은 아니었듯이 말이죠. 매일 접어야 하고, 시간이 흐르며 낡고 달아도 그들이 염려치 않은 것은 그들이 가야 할 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 갈망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모두가 지금 당장의 문제에 시선을 돌릴 때도 그리스도인은 그 너머에 예비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넘으며 똑같이 느끼는 한계를 가지고도, 우리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바울은 거듭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죠.
제가 존경하는 사상가인 신영복 씨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언어들 가운데 가장 귀중한 희망의 언어로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을 꼽았습니다. '석과는 먹지 않는다'라는 뜻의 사자성어죠. 여기서 석과란, 열매 가운데 맨 마지막에 남아있는 '씨과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옛 조상들은 유독 감을 좋아했다고 하죠. 그래서 감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감나무에 달린 감 열매를 다 따지 않았다고 해요. 그중 가장 크고 실한 것 하나는 꼭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날아다니는 새들의 먹이가 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과실이 씨과실이 되어서 다음 해 종자로 사용되게 했다는 것이죠.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너머의 여유가 세월을 이끌고 시대를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에게도 이런 눈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다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첫 열매를 주님께 드리듯 남을 위해 남겨둘 때 이 사회가 이어지고 유지되죠. 우리의 믿음도 그래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남겨두어야 하고 역사하실 기회를 열어두어야 하죠. 그 여유가 우리를 살립니다.
오늘도 여유 있는 눈으로 조금 멀리 보고, 믿음의 마음으로 조금 더 기다리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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