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2. 07:01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5:27~28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에 굴복시키셨다"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굴복시켰다고 말할 때에는, 모든 것을 그에게 굴복시키신 분은 그 가운데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께 굴복당할 그때에는, 아들까지도 모든 것을 자기에게 굴복시키신 분에게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유의 주님이 되실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최근 교회 발코니 시멘트 바닥 사이에 뜻밖의 푸른 풀들이 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느 뜸인가를 헤집고 잡초가 자라고 있더라고요. 잡초의 생명력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메마른 땅의 생명처럼, 어쩌면 선한 것 하나 없는 이 세상의 정해진 허무함 속에서 뜻밖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쾌지수 높은 무더위 속에서 시원한 냉수 같은 청량감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 되기를 기도합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 사상을 가지고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설명했던 바울은, 또다시 구약의 말씀을 가지고 한 가지 중요한 논리 하나를 전개합니다. 인용된 구약은 유대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다윗의 시편인데요. 시편 8편의 말씀입니다.
시 8:3~6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주님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에 두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만물 통치권에 대한 것이죠.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첫 사람 아담에게 복을 주시며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죠.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인간은 하나님 아래에서 만물을 다스릴 권세를 지녔습니다. 어쩌면 가장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도 크고 강하고 광대한 땅과 생명들을 다스릴 자격을 가졌던 셈이죠. 그런데 그 권세가 죄로 인해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마치 머리를 깎이고 힘을 잃은 삼손처럼, 하나님을 떠나 나라를 잃은 유대 백성처럼, 그 귀중한 권세를 인간이 잃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그 귀중한 권세를 다시금 회복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오래전 다윗은 시편 8편에서 인간의 권세에 대한 창세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하고 있죠. 그러나 그가 말하는 인간의 권세는 잃어버린 권세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금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서 죽음이 왔듯이 한 사람에게서 생명이 온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윗의 시편에 등장하는 사람,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곧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회복한다고 예언하는 거죠.
오늘 본문은 이것을 받아 바울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죠. 어쩌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권세는 하나님 아래 있을 때만 가능한 권세였습니다. 마치 연줄에 매달려 묶인 연만이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과 같이 말이죠. 그런데 그 권세를 오해한 첫 사람은 더 큰 자유를 꿈꾸며 그 연줄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나락이었죠. 바울은 그 점을 짚고 있습니다. 모든 죽음을 이기시고 모든 권세를 부여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엎드리는 분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죠? 잘 받을 줄 알아야 잘 줄 줄도 안다고요.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을 할 줄도 알죠. 복종할 줄 알아야 다스릴 줄도 압니다. 가끔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서 사장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죠. 이들은 다른 이들의 후광에 힘입어 낙하산으로 갑자기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된 이들보다 존경을 받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으니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그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아마도 현장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어려움을 알고, 아픔을 알고, 설움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고개 숙일 줄 아는 사람이 존중받고, 엎드릴 줄 아는 사람이 존경받습니다. 어쩌면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낮은 자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는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와도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요.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말에 힘이 있고요.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섬김 받는 자리에 서는 법입니다. 세상에 유아독존은 없습니다. 나 혼자 잘나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났다면 보내신 이가 있고, 존재한다면 허락한 이가 반드시 있습니다. 창조에는 시작이 있고, 그 시작에는 하나님이 계시죠. 우리의 시작은 그래서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 복종이 우리의 시작이고, 그 엎드림이 우리의 기초예요. 우리의 잘됨은 그 엎드림에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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