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4. 07:01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5:35~44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그들은 어떤 몸으로 옵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가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 밖에 어떤 곡식이든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그 씨앗에 몸을 주시고, 그 하나하나의 씨앗에 각기 고유한 몸을 주십니다. 모든 살이 똑같은 살은 아닙니다. 사람의 살도 있고, 짐승의 살도 있고, 새의 살도 있고, 물고기의 살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도 있고, 땅에 속한 몸도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몸들의 영광과 땅에 속한 몸들의 영광이 저마다 다릅니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들의 영광이 다릅니다.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찌는듯한 무더위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그리고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삼중고에 시달리는 요즘입니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했나요? 더 어깨가 처지고 힘든 여름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눅 들어 살 필요는 없어요. 돌아보면 언제 편안했던 시절이 있었습니까? 만족했던 상황이 있었나요? 오히려 위기는 기회가 되고 바닥은 재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하죠. 나쁜 일을 묵상하면 한정 없이 나쁜 일만 우리 주위에 있는 것 같지만 또한 좋은 일을 묵상하면 없을 것 같은 기쁘고 감사한 일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니 내 눈앞에 놓인 현실에 낙심하지 마세요. 그 너머에 숨겨진 비밀들을 찾고 구하세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오늘도 믿음의 눈으로 담대히 일어서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더 어렵습니다. 바울의 깊은 생각과 뜻을 헤아릴 지혜와 지식이 제게 없습니다. 게다가 부활이라고 하는 신비의 영역에 대한, 넓고 높은 차원의 이해를 따라가기에는 벅찹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온전히 이해하고 전해드리는 것은 버거울 것 같습니다. 다만 낮은 차원에서 미력하게나마 묵상하고 주신 생각들을 나누는 것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아마도 부활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부활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부활한다면 어떤 모습인지에 이르기까지 그 의견들은 다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부활의 유무에 관한 논쟁을 다뤘던 바울은 이제 부활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를 다룹니다. 사람들에게 다양한 궁금증이 있었을 텐데요. 부활하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한탄하는 모습을 보니 바울이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이는 아마도 옳지 않은 해석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것은 이전에 살았던 모습 그대로, 그러니까 죽은 육체가 다시 환원하여 현생에서 살았던 모습 그대로 부활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부활한 모습이 어떨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를 바울은 씨앗을 통해 비유로 설명하죠. 씨앗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뿌리를 내리고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치를, 씨앗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부활한 모습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는데요. 씨앗이 죽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거두는 나무로 자랄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부활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다른 모습에는 또 다른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씨앗이 큰 나무를 만든다는 원칙입니다. 하잘것없는 작은 씨앗이 많은 사람의 그늘을 만들고 먹을 것을 열매 맺는 큰 나무로 성장한다는 원칙이죠. 그래서 씨앗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씨앗에서 나무를 생각할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하죠. 부활은 그 씨앗을 30배, 60배, 100배의 영광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활의 몸이 어떤 몸이 될지, 그때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상도 되지 않아요. 그러나 분명히 믿는 것은 있습니다. 비록 지금 나의 모습이 작고 초라한 눈곱만한 씨앗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심고 가꾸고 물 주면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아름다운 열매의 나무가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비천하고 보잘것없어도 계속 뿌리고 심으면 언젠간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자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부활 신앙은 오늘의 나를 보지 않습니다. 오늘 심은 씨앗이 어떻게 자랄지 그 미래에 투자하는 거예요. 작은 씨앗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그 씨앗에서 큰 나무를 볼 줄 아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작다고 포기하지 않고, 연약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힘겹다고 외면하지 않는 끈기가 부활 신앙의 기초입니다. 나의 미래는 오늘이 모여서 만들어집니다. 나의 비전은 오늘 작은 씨앗을 심어서 세워지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에게는 작고 어제와 똑같은 그저 그런 오늘이지만,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의 시작인 오늘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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