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3. 07:06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5:29~34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무엇하려고 그런 일을 합니까? 죽은 사람이 정말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은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습니까? 그리고 또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감히 단언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그 일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웠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동기에서 한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만일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나쁜 동무가 좋은 습성을 망칩니다.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내가 이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 가운데서 더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코로나19가 재유행하는 느낌입니다. 주변 가까이 확진자들이 속출하네요. 공동체 가족들 가운데 확진된 분들이 많습니다. 쾌유를 빌며 조금 더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아무리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려도, 주님이 여신 새롭고 산길을 걷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이 앞을 막아도 오늘을 좋은 생각과 좋은 눈으로, 믿음의 시간을 만드는 우리를 막을 수 없어요. 그렇게 담대히 이 아침을 시작하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시작부터 조금 어렵네요.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초대교회 당시 세례 없이 죽은 가족들, 혹은 지인들을 위해 대신 세례 받는 풍습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추측하게 되는데요. 아마도 이는 확실한 기독 교리에서 출발한 풍습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죽은 자를 대신한 세례, 더 나아가 죽을 자를 위한 세례에 대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교회 내에서 뜨겁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이런 풍습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바울은 부활신앙의 간절함을 설명하기 위해 이 말을 덧붙인 것으로 보여요.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렇게까지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말이죠. 이어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온갖 협박과 박해, 죽음을 무릎 쓴 이유에 대해 말하죠.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고수하는 이유 또한 부활을 믿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미래에 대한 계획을 확신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언급하죠. 그러면서 바울은 강하게 외칩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의미는 매일매일이 죽을 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뜻이겠죠. 아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 말을 해석하면 그는 날마다 죽음을 향해 행진한다는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을 믿기 때문이죠. 마치 운동선수가 훈련을 통해 성장함을 믿기에 오늘 숨이 턱까지 차는 훈련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매일매일의 삶은 힘들고 지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순간들이 나의 목을 조르며 달려들지 알 수 없는 상황이죠. 그런 삶을 견디어 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닥친 현실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래서 더 힘든지도 모르겠어요. 어려운 상황임을 알아서, 견디기 힘들고 괴로운 순간임을 알아서 말이죠.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삶의 혁신적 변화를 주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고 말이죠.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내 앞에 있는 것을 즐기라고 말입니다. 아니, 그 시간 속으로 달려들라고 말이죠. 그것도 웃으며 기쁘게 감사로 말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죽으나 죽지 않고, 힘드나 어렵지 않게 부활의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 더 강하고, 오히려 어려움 앞에서 더 은혜로운 역사를 만드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괴로울수록 더 즐기고, 힘들수록 더 기뻐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골이 깊을수록 산이 높듯이, 광야가 길수록 젖과 꿀이 더 단 법이니까요.
오늘도 현실 앞에 우리는 섭니다. 숨이 막히는 상황, 뻔하게 반복되는 일상,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들이 나를 노려보는 하루 앞에 섭니다. 그래서 즐겁습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옵니다. 멈추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오히려 숨이 편안해질 때가 있어요. 즐기면 편해집니다. 뻔한 일상을 특별한 하루로 만드는 재미가 있고, 공격하는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묘미가 있어요. 즐기는 사람에게는 도전이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셔서 가장 적절하고 알맞은 것으로 채우신다는 믿음이 있는 자들은 오늘을 즐깁니다. 나쁠수록 더 기대하고, 조일수록 더 큰 기적을 꿈꾸죠.
사랑하고 존경하는 공동체 가족 여러분, 피할 수 없으면 즐기세요. 억지로 하지 마시고 믿고 뛰어드세요. 꾸역꾸역 끌려가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끌고 가세요. 어떤 문제 가운데서도 구하시고 새롭게 하실 주님이 내 뒤에 계십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고, 어둠을 빛으로 채우시는 주님이 내 곁에 계셔요. 그 믿음으로 오늘을 시작하는 우리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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