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6. 07:00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5:20~22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부활의 능력으로 이 아침을 여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부활을 강변하며 잘못된 교리로 고린도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무리들을 강하게 질책했던 바울은 유대인들의 전통적 배경이 되는 절기의 이야기로 부활의 논리를 풀어냅니다. 이스라엘에는 그들만의 종교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달력과는 많이 다르죠. 그들의 새해는 니산월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달력으로는 3~4월쯤 되는데요. 그 달을 이스라엘에서는 정월이라 부르죠. 그 니산월의 14일이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이 이집트 노예로부터 탈출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열 가지 재앙 중, 각 집안의 장자들이 죽는 재앙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의 상징인 절기죠. 그 유월절 후 일주일은 무교절입니다. 이집트로부터의 해방과 구원을 감사하며 기념하는 절기로, 누룩이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었어요. 여기서 오늘 본문과 연관된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 무교절을 시작한 셋째 날, 그날을 유대인들은 초실절로 지켰습니다. 초실절이란,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이스라엘의 유월절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한 바 있죠?
요 1:29,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를 구원하신 유월절의 어린양과 같다고 선포하는 것이죠. 그리고 3일 후, 그리스도의 부활은 초실절처럼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논리는 전통적인 유대인들에게 이해를 돕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구약의 약속과 증표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어 또 다른 중요한 논리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첫 사람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하며 그 첫 열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다는 말은, 첫 사람 아담을 통해 우리에게 죄가 들어오고 죽음이 임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우리는 원죄라고 부르죠. 그런데 또한 한 사람으로 인해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하죠. 아담에 속해 있으면 죽음이 끝이지만 예수에 속하면 죽음을 이긴 부활로 나아간다는 뜻이죠.
모든 일에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어느 편에 서느냐,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길이 정해지죠. 우리가 머물러 있는 곳이 곧 우리의 미래가 됩니다. 밝은 빛을 바라보면 우리는 그 빛을 향해 갑니다. 그러나 내가 어두운 곳을 바라보면 우리는 한정 없이 어둠 속에 갇히죠. 한때 번성했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순간, 비련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는 숙부 아브라함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던 롯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잊고 미련이 남은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쳐다보다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죠. 왜 소금기둥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녀가 어떤 태도였는지는 분명하죠. 절체절명의 순간, 우유부단과 정하지 못한 태도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주죠.
내가 바라보는 곳이 내 미래가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의 길이 되고요. 내가 믿는 대로 길이 열립니다. 아담의 길에 머물면 죽음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나의 자리예요. 믿음은 그 태도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에게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찾는 자가 그 은혜를 갖고요. 그분의 권능과 축복을 믿는 자가 구하고 갈망합니다. 또 찾고 얻고 문이 열리죠. 그렇게 우리는 믿음대로 됩니다. 의심을 믿으면 의심대로 되고, 확신을 가지면 확신대로 됩니다. 이미 길은 열렸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믿고 걸으면 내딛는 내 발 밑에 주님의 길이 열립니다. 그분이 우리의 첫 길, 첫자리, 첫 집, 첫 문이 되어주셨기 때문이죠.
수 24:15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당신들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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