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4. 07:04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삼상 14:24~30 그 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허기에 지쳐 있었다. 사울이 군인들에게 "내가 오늘 저녁에 적군에게 원수를 갚을 때까지, 아무것이라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하고 맹세시켰기 때문에, 군인들이 모두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다. 거기에 있던 모든 군인들이 숲으로 들어갔다. 들녘의 땅바닥에는 꿀이 있었다. 군인들이 숲에 이르러서 보니, 벌집에서 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인들은 맹세한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손가락으로 찍어다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요나단은 자기의 아버지가 군인들에게 그런 맹세를 시킬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내밀어 그 끝으로 벌집에 든 꿀을 찍어서 빨아먹었다. 그러자 그는 눈이 번쩍 뜨이고 생기가 넘쳤다. 그때에 군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나서서, 그에게 알려 주었다. "임금님이 누구든지 오늘 무엇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모든 군인들에게 철저히 금식하도록 맹세를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이렇게 지쳐 있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이 탄식하였다. "나의 아버지께서 이 나라를 어렵게 만드셨구나. 생각하여 보아라. 이 꿀을 조금 찍어서 맛만 보았는데도 눈이 번쩍 뜨이고 생기가 넘치는데, 오늘 우리 군인들이 적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고 싶은 대로 먹었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겠느냐? 그랬더라면 블레셋 사람들을 더 많이 죽이지 않았겠느냐?"
좋은 아침입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물리칩니다. 블레셋 스스로 오합지졸이 되어 자멸하고, 반대로 이스라엘은 용기를 얻어 단합하였으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그런데 이때, 사울은 알 수 없는 결정을 하나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금식을 강요하는 거죠. 그 명령은 왕명이 되어서 전달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싸우는 김에 끝장을 내자는 심사였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그는 지금 이 승리에 확신이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스라엘 군대가 자만할까 봐 그랬을까요? 다른 것도 아니고 밥이라니, 군대가 배고파서야 어디 전쟁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유추컨대 사울의 이런 행동은 아마도 종교성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그 종교성이란 이런 것입니다. 자신을 학대하고 고행을 수행하며 무언가 얻으려는 인간적 수단이죠. 고대 종교에서 주로 있었습니다. 가장 귀한 가족들을 제물로 바치거나 천일의 정성을 기울이거나 아니면 99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등 뭔가 자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신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저급한 습성이 우리에게 있죠. 마치 이것은 어린아이가 자신의 소원을 빌미로 부모에게 '나 밥 안 먹어!'라며 협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저급한 종교성에 가치를 두는데요. 이것은 겸손도, 또 낮아짐도, 그렇다고 헌신도 아닙니다. 그저 자학적 이기심일 뿐이죠.
그러나 이것이 고대 하등 종교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습성들이 있어요. 내가 고생을 하는 것이 드러나야 믿음이 있는 것처럼, 뭔가 자신을 희생하며 자기가 큰 손해를 본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잘 먹지도 않고요. 좋은 것은 사치라며 가까이하지 않고, 편안한 것은 교만하다며 누리지 않는 경향들이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것 먹으면 안 됩니까? 마음 편하게 쉬고, 명품 매면 안 되나요?
우리는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는 내가 편안 꼴을 못 보신다는 듯 생각한다는 점이죠. 그분은 늘 나의 희생을 원하고, 나의 가난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있는 가장 큰 착각인지도 몰라요.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장 편안하기를 원하시고, 가장 좋은 것,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지길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가장 행복하기를 바라시죠. 문제는 우리의 행복의 우선순위가 명품이 아닐 뿐입니다. 미각이 행복의 1순위가 아닐 뿐이죠.
우리는 좋은 것 먹어도 됩니다. 좋은 것 누려도 되고, 문명의 이기를 만끽해도 됩니다. 우리의 영성은 쥐어짜 낼 수 없습니다. 나를 자학해서, 나를 고립시키고 고생시켜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성은 우리가 행복할 때 빛을 바랍니다. 우리가 기쁘고 웃을 때 우리의 영성은 자랍니다. 배부르고 여유가 있을 때 진짜 영성이 만들어지죠. 왜냐하면 그때가 기로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영성의 길 앞에 놓이죠. 그때 우리의 선택이 빛납니다.
주신 것을 누리세요. 자발적 가난은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배부를 수 있을 때 나눌 수 있고, 내가 많은 것을 가질 때 섬길 수 있는 것이니까요. 가진 것을 감사하고, 주신 것을 기뻐하세요. 평강과 기쁨의 자리에서 자원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편에 서는 것이 영성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굶지 마세요. 자신을 학대하지 마세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자신을 행복하게, 기쁘게, 평안하게 가꾸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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