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14. 07:18ㆍ묵상하는말씀/요한복음묵상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원래 발을 씻기는 일이 당시에 존재했습니다. 주로 샌들을 신고 다녔던 유대인들은 발이 더러워지기 쉬웠죠.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 발부터 씻었던 모양입니다. 손님들이 초대되어 오면 그들에게 먼저 발을 씻을 물을 내어 주는 것이 예의였죠. 그런데 이때 발을 씻기는 일은 주로 종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신분이 낮은 이들이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일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이죠.
그날은 만찬의 날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작정을 하셨던 모양이에요. 뜬금없이 일어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많이 당황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을까요? 우리는 보통 그냥 예수님께서 섬김의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 세족을 거행하셨다고 넘어가기 쉬운데요. 그 생각, 그 행동을 하신 이유나 계기가 무엇이었을까를 조금 생각해 보시죠. 물론 저도 왜 섬김의 모범을 보이려고 하셨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려고 하신 구체적인 이유가 눈에 번뜩 띄었습니다. 그 이유가 한 가지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몇 차례에 걸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데 저는 오늘 처음 그 구절이 눈에 들어왔네요. 그렇다면 제 눈에 들어온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입니다. 이제 그동안 교제하고 사랑을 나누던 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을 오고있음을 아셨던 것이죠. 언제나 헤어짐은 마음이 아픕니다. 그 관계가 끈끈하면 할수록 더더욱 그렇죠. 이 장면에서 저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합니다. 슬픈 것에요. 아쉬운 것이죠. 헤어짐의 아픔을 느끼시는 겁니다. 그때 그가 남겨주고 싶은 것이 바로 사랑의 증표였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선택한 것은 바로 섬김이었습니다. 끝까지 낮아지고 섬기고 베풀고 나누는 사랑을 보여주시죠.
두 번째는,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 넘길 줄을 아시고’입니다. 이는 또 다른 마음 아픔이죠. 헤어지는 것도 슬프고 아쉽지만 배신을 당하는 것은 더욱 아프고 슬픈 일입니다. 그것도 믿었던 이들에게서 받는 배신이라면 더욱 그렇죠. 혹시 우리가 남의 배신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라면 아마도 그 배신을 무력화할 어떤 반격을 했을 것 같아요. 배신은 나쁜 일입니다. 그래서 응징을 해야죠. 아무리 제자여도, 아무리 친구여도 배신은 순수히 당할 수는 없잖아요? 그것이 예수님과 저의 차이죠. 예수님은 그 배신에 대응합니다. 그 대응은 사랑이었어요.
세 번째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입니다. 이는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아셨다는 의미 같아요. 죽음을 앞두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도 사랑입니다. 억울함 앞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 조용한 섬김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예수님의 모습에서 한 가지 옛말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이 말을 오늘 말씀에 빗대어 다시 말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길은 사랑으로 통한다’고요.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고난이 와도 사랑, 공격이 와도 사랑, 감정이 상해도 결국은 사랑, 그것보다 더 큰 힘이 있을까 싶습니다. 누구도 넘어뜨리지 못할 힘,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의연함은 바로 ‘모든 길이 정해진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오늘도 많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예상 밖의 일들, 끊임없는 도전과 공격들, 풍전등화와 같은 흔들리는 감정들이 나를 혼미하게 만들지도 모르죠. 그래도 우리의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떤 길을 걸어도 그 길의 끝은 사랑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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