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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75 - 지금 당장 몰려올 멸망을 바라보며 살지말고, 주님 약속하신 회복을 바라보며 사세요. 예레미야 30:1-11

예레미야 30장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예레미야의 반환점을 돌았네요. 30장에서 33장까지는 소위 ‘위로의 책’이라고 불리는데요. 왜냐하면 바빌로니아에 의한 멸망과 포로 생활의 끝을 선포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40년간 사역을 했습니다. 40년이라는 기간은 상징적입니다. 모세도 하나님께 부름 받아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살았고, 다윗 역시 40년을 왕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연수지만 예레미야는 모세나 다윗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모세나 다윗은 비록 출렁이는 세월을 살았지만 대체로 희망과 소망의 시간이었죠. 가나안을 향한 소망의 길이었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들에 비해 예레미야의 40년은 참 우울합니다. 그의 사역에는 늘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주제였고, 예루살렘의 파괴와 동족들의 아픔을 목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의 40년은 침울함이 묻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사역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을 테죠. 타인의 심판을 선언하고, 끝없이 잘못을 지적하며 돌아오기를 호소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이 말했던 것과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죠. 자신이 선포한 대로 동족들이 잡혀가고,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어땠을까요?

그와 더불어 그는 오늘 또 다른 선언도 합니다. 그것은 포로 된 이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이죠.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예레미야의 시선으로 자신의 사역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자리에서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묵상하게 되네요. 예레미야에게는 2가지 미래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멸망이고요. 또 다른 하나는 회복될 미래입니다. 멸망은 당장이고, 회복은 끝 모를 미래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살아생전에 그 미래를 볼 수도 없을지 몰라요.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고 사람들은 먼 미래보다는 당장의 아픔에 힘겨워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근시안적으로 당장의 아픔에 집착했더라면 아마도 40년간 그런 사역을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도망가거나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르죠. 그만큼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나의 미래가, 나의 현실이 참담하고 멸망이 정해져 있다면 그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는 자신이 선포하는 심판으로 살지 않았어요. 지금 당장 몰려올 멸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래의 회복을 바라보며 살았어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실의 침울함, 절망감을 견디며 살 수 있었던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앞에는 막막한 현실도 놓여 있고, 실낱같은 소망의 미래도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막연한 미래의 희망이죠. 하나는 가깝고, 다른 하나는 멉니다. 우리는 이중 무엇을 붙잡으며 오늘을 살아야 할까요? 예레미야는 현실을 살면서 미래를 꿈꿨습니다. 그 미래가 현실을 견디게 했고요. 그 희망이 사역을 멈추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 또한 녹녹지 않아요. 현실을 보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레미야의 사역이 그 많은 이들의 비난과 저주를 받아 가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바라본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소망이었기 때문이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세요. 지금 내 발밑이 아니라 저 먼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세요. 소망이 나를 살게 하세요. 미래가 현실을 이끌게 하세요. 그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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