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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70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만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레미야 27:12-22

며칠 전, 예레미야를 요나와 비교한 적이 있죠?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습니다. 적국의 심장부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것도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구원받는 것이었어요. 만약 그들에게 하나님의 용서가 임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대립각을 세웠던 이스라엘에게 위협의 존재로 남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요나는 민족의 배신자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예레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하고 있는데요. 그 내용이 조금 거시기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게다가 그 멸망에 이웃 바빌로니아가 사용될 것을 말하고 있죠. 한마디로 ‘너희는 바빌로니아에 망할 거야’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저주죠. 예레미야는 지금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저주를 퍼붓고 있는 거죠.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또 이웃이 쳐들어와도 막지 말라고, 막는 것이 소용없다고 외친다면 그것은 매국노 소리를 듣기 딱 좋죠. 지금 예레미야가 그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합리적인 생각이 있어요. 누구에게나 옳고 그름이 있죠. 각각의 기준에 따라 다 다르지만, 누구나 자기의 정해진 길이 있습니다. 때론 가정교육이나 환경에 따라 정해지기도 하고, 때론 사회적인 영향에 따라 세워진 뜻이기도 하죠. 그 자신의 뜻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사회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정하죠. 그런데 그 뜻에 반하는 상황을 만나면 때론 낙심하고 절망하며, 때론 저항하고 투쟁을 하게 되죠. 이렇게 민족적인 전통 속에서 자기의 울타리를 치고 살았던, 더욱이 민족의 자긍심이 강한 유대 민족에게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죽이고 싶도록 미울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의 시대에도 등장합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며 소리 지르는 것은 예수님의 메시지가 자신의 기준, 자신의 자긍심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자기 자긍심이 끓어오를 때는,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아요. 자존심이 솟구칠 때는 자기를 돌아보기보다 남 탓에 목숨을 걸게 되죠.

죄송한 이야기지만 죄에는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용서를 할 때도 희생의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그만큼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고, 그만큼 당했던 아픔을 씻어내야 하죠. 그런 희생이 없이는, 그런 대가가 없이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시간을 희생해야 하고, 나만의 시선, 나만의 뜻을 고집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죠. 나와 똑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나와 다른 모습의 차이를 채워야 하는 희생이 있어야, 대가를 지불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론 자기 자신의 뜻대로 사랑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면 사랑이 오히려 미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죄에도 대가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값없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죄를 씻어주시죠.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그 값없는 용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다시는 그 죄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죄에서 해방될 수도 없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만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벌도 달게 받는다는 의미죠. 그 말이 조금 어색하신가요? 그러면 벌보다 훈련이라고 바꿔볼까요? 내가 누군가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그가 주는 좋은 말도 듣지만 또한 나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말도 듣는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장점은 살리고, 나의 단점은 고쳐나가야 하니까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나의 단순한 인간적 친구가 아닙니다. 친구에게는 좋은 말만 듣고 싶죠. 나의 인생을 걸고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자존심을 세우며 만나고 싶죠. 그러나 나의 길이며, 나의 주이며, 나의 생명보다 귀한 분이라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거기에는 칭찬도 축복이고, 지적도 축복입니다. 거기에는 위로도 은혜이고 훈련도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좋은 말만 들으려 하지 마세요. 나를 바꾸는 것은 아픈 말들 속에서 나옵니다. 말씀이 달콤하기를 바라지 마세요. 오히려 우리를 세우고 변화시키는 것은 찔리는 말씀들입니다. 베드로의 첫 설교에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 자신들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나를 세우는 것은 아픔이고, 나를 세우는 것은 자극이에요. 나에게 아픔이 있을 때는 성장하는 때입니다. 나에게 어려움이 생길 때에는 자라는 때죠. 마치 광야처럼 말입니다. 오늘도 말씀이 나를 자극하여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우리의 인생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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