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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나서묵상

요나06 - 우리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요나 4:6-1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그런데 지름길로 가려면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을 거쳐야 했죠.
아시다시피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상종을 안 했습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의 마을을 피해 먼 길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 마을을 통과하기로 하시고 미리 사람을 보내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은 그 길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죠.
이때,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대단한 요구를 합니다.
이에 성경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셨다고 간단히 기록하고 있는데요.
다른 고대 사본에 보면 조금 더 친절한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덧붙여 있어요.
"너희는 어떤 영에 속해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 인자가 온 것은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 함이 아니라 구원하려 함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내가 주인이었던 삶에서 주님이 주인인 셈으로의 변화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인식의 대전환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나의 생각이 아닌 주님의 생각이,
나의 나라가 아닌 주님의 나라를 꿈꾸는 것이죠.
이것은 그야말로 영적 혁명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그 인식의 변화란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렸듯이 그것을 2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즉 그분의 마음을 품고 닮아가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 즉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이죠.
이것을 사회학적 용어로 타자 인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다른 점은 타인을 보는 시각인 것이죠.

오늘 본문은 요나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시내를 빠져나와 나지막한 언덕에 초막을 지었습니다.
니느웨가 어찌 되나 볼 심산이었죠.
그런데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앉아있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박 넝쿨 하나를 자라게 하셔서 그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로 햇볕을 피할 수 있었던 요나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어제까지 박 넝쿨 잎으로 인한 그늘에서 시원함을 느끼던 요나였는데요.
밤새 벌레 한 마리가 박 넝쿨 잎을 다 갉아먹어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다음날이 되니 요나에게는 따가운 햇볕이 그대로 쬐었죠.
뿐만 아니라 동쪽에서 뜨거운 바람도 마침 불었습니다.
요나는 정신이 혼미할 만큼 무더위에 지쳤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죽고 싶다를 달고 사는 우리네와 닮았습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차라리 다 그만두자고 소리치는 우리네와 닮았죠.

이렇게 못난 투정을 부리는 요나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나서 4:10~11,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는데,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한마디로 이렇습니다.
자신에게 이로운 박 넝쿨 잎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아까워하면서 자신과 상관없다고 십수만 명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는 요나에 대한 질타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인지도 몰라요.
나에게 이로운 사람들에게는 간까지 내주면서 나와 상관없는 이들은 죽든 말든 아무 관심 없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향하신 말씀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22:39,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마 10:42,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 25:3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눅 10: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요 15:13,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나서의 마지막 대목은 하나님의 질문으로 마칩니다.
“네게 이로운 박 덩굴 잎은 그렇게 아까우면서 수십만 명의 이웃은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말이냐?”
그런데 요나서에는 그 질문에 대한 요나의 대답이 적혀있지 않습니다.
요나의 대답이 왜 적혀있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오늘 요나가 '나'이기 때문이겠구나!
그러니까 내가 대답해야 하는 것이죠.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너의 감정은 끔찍이 생각하면서 남의 감정은 죽든 말든 상관없느냐?”
“너의 가족은 끔찍이 생각하면서 남의 가족은 죽든 말든 상관없느냐?”
“너의 교회는 끔찍이 생각하면서 지역의 이웃은 죽든 말든 상관없느냐?”
이에 대한 대답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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