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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나서묵상

반드시 기회는 다시 옵니다

[요나서묵상05] 반드시 기회는 다시 옵니다. 


욘3:1~2

1    주님께서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1.

[디즈니만화영화]

저는 어릴 적에 이 만화들을 보고 자라났는데요.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 도날드 덕 등의 캐릭터는 유명하죠.

이 캐릭터 만화를 보지 않은 분은 아마 거의 없으실텐데요.

이 캐릭터들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입니다.

그 회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정글북, 백설공주, 라이언킹, 미녀와 야수 등 뽑을 수가 없죠.

그런데 사람들은 디즈니컴퍼니가 단순히 애니메이션회사이겠거니 하지만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입니다.

가장 큰 규모의 영화사뿐만 아니라 미국 3대 방송사인 ABC방송이나 가장 규모가 큰 스포츠 채널 ESPN도 소유하고 있고, 스파이더맨, 엑스맨으로 유명한 만화회사 마블코믹스도 디즈니컴퍼니 거구요. 

그들이 경영하는 디즈니랜드는 세계를 대표적인 테마파크죠.

혹자는 미국의 3대 수출품으로 맥도날드,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미키마우스라고 하기도 하죠.

디즈니컴퍼니는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기업입니다. 

이들의 매출은 연평균 65조원에 달하는데요.

코카콜라가 연매출 50조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치죠. 


디즈니컴퍼니를 설립한 사람은 월트 디즈니입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일을 시작했는데요.

그가 한 일은 상업광고의 도안을 베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요.

그렇게 애니메이션에 꿈을 갖고 여러 매체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했죠.

그러나 번번이 그는 퇴짜을 맞았습니다.

퇴짜의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어요.

그렇게 퇴짜를 맞으며 그린 그림이 스케치북 십수만장이랍니다.

몇 백 장도, 몇 천 장도 아닌 십수만장이요.


2.

혹시 KFC 좋아하시나요?

캔터키 프라이드치킨이죠.

우리나라는 프라이드치킨 종주국처럼 엄청난 가게수를 자랑하죠.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그 맛은 인정을 받고 있어요.

중국이나 심지어 미국에서도 한국 프라이드치킨 인기가 높다고 해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KFC가 가장 인기 없는 곳이 한국이기도 하죠.

아무튼 KFC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프라이드치킨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창립자는 커널 샌더스인데요.

그의 레시피는 80년간 1급 비밀로 취급되어 있습니다.

그런 레시피도 단 한 번에 완성된 것은 아니죠.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까지 1,000번을 넘는 시도를 거쳐야 했습니다.


3.

한 가지 더 소개해 볼까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해리포터입니다.

젊은 아이들은 필수적으로 읽는다는 판타지 소설이죠.

성경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책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5억 부가 팔렸다고 하네요.

감이 잘 안 오시죠?

국내에서는 500만부만 되어도 초대형 베스트셀러이고요.

최근 천만부를 돌파한 출판사는 100억짜리 빌딩을 세웠다는 기사가 있었죠.

이 정도라면 5억 부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아실까요?

물론 해리 포터를 쓴 작가 조앤 롤랑은 1조원대의 자산가가 되었죠.


그런데 조앤 롤랑이 쓴 해리포터가 바로 빛을 보았을까요?

그녀는 자신이 쓴 해리포터 원고를 들고 많은 출판사를 찾아 다녔는데요.

매번마다 퇴짜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기를 그가 몇 년을 했는지 아세요?

자그만치 7년 동안 그녀는 매년 수 백개의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어요.

다림교육에서 2017년도 사업을 위해 사업지원을 했는데요.

지난주까지 3번 떨어졌습니다.

제 마음은 이미 포기상태에요.

저도다 믿음이 좋은 우리 권사님, 집사님들은 더 해보자고 하는데요.

저는 또 떨어질까봐 벌써부터 걱정이 되고, 낙심이 되는 거 있죠.

이렇게 실패와 거절은 마음을 위축시켜요.

그런데 3번이 아니라 30번, 300번, 수천번, 수년동안 어떻게 그러죠?


4.

우리는 성공을 참 쉽게 봅니다.

우리가 보는 성공은 화려한 것이죠.

그러나 그 성공이전에 숨겨져 있는 것들에는 시선을 두지 않을 때가 많아요.

앞서 말한 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패턴을 보게 되죠.

물론 그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타고난 재능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죠.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재능이나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들이 자신들에게 있는 재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요.

바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왜 누구는 쉽게 포기하고, 누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이 품었던 꿈을 실현하는 것일까요?

왜 누구는 쉽게 절망하고, 누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일까요?


5.

이런 질문에 대해 연구를 한 사람이 있어요.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앤젤라 더크워스 교수는 10년 동안 이 문제를 연구해 왔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재능을 포기하지 않고 실현하는 데는 아이큐보다, 재능이나 환경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것을 한 단어로 표현했는데요.

"GRIT"


이것은 보통 ‘투지’나 ‘기개’ 정도로 번역되는 단어인데요.

엄밀히 말하면 고난을 견디는 근성, 집념, 용기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은 어떤 동물인줄 아세요?

한번 물면 결코 놓지 않는 동물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꿈과 미래를 물고 늘어지는 거죠.

어쩌면 신앙은 세상의 온갖 방해에도 주님의 십자가를 물고 늘어지는 것인지도 몰라요.

우리에게 고난은 어쩌면 그런 투지를 불사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6.

잘 아시는 대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 명령에 반해서 다른 길을 걷죠.

그는 스페인으로 가는 배에 올라 깊은 내실에서 깊은 잠에 빠집니다.

이 모습을 생각하면 참 씁쓸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이 딱 제 모습 같거든요.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의 길이 참 어렵고 힘들어요.

그 길보다는 쉬운 길이 있고, 편안한 길이 있죠.

남들이 다 가는 길, 남들이 다 원하는 길이 있죠.

하나님의 길보다 그 길이 훨씬 더 편하고, 훨씬 즐겁습니다.

잠시 눈만 감으면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똑같으니까요.

세상과 다르지 않으니 아무도 방해를 하지 않으니까요.


7.

세상이 시끄러워도 방에서 편히 TV나 보고 있으면 되니까요.

수고스럽게 나의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요.

남을 위해 살라고 하는 말보다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더 편하죠.

서로 사랑하라는 말보다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는게 더 편쵸.

그렇게 배 깊은 내실에서 편안하게 잠이 드는 것이 나의 모습이죠.


8.

그러나 그 모습의 결과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 편안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습니다.

결국은 우리의 편안함은 심판 앞에 놓이죠.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은 인간의 모습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간다운 모습의 기준 앞에 놓이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인본주의적 발언이 아닙니다.

인간답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으로의 모습을 말하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대로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입니다.

요나에게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요나답게 사는 길이죠.

그것이 힘들든, 어렵든, 심지어 죽음일지라도 말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거기서 오는 것입니다.


9.

그러나 오늘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에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욘3:1~2    주님께서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2절의 말씀은, 요나서1장 2절의 말씀의 반복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단어는 “또다시”라는 말이죠.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으십니다.

물론 요나를 그 일에 순종하지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다시 요나에게 사명을 부여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10.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포기할 뿐이죠.

하나님은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기회를 또다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금 기회는 주어진다는 것이죠.


11.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실패할까봐 도전하기조차 두려워하죠.

그런데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은 단순한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가 실패를 경험할 때 마치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죠.

마치 내가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신 것이라고 여기는 거죠.

우리는 요나에서 배우는 바가 있습니다.

요나의 실패, 즉 그가 바다에 던져지는 절망은 누구 때문입니까?

그는 무엇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 가야 하죠?

그것은 모두가 요나의 생각과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징벌이나 요나를 포기하신 것 때문이 아니에요.

오히려 요나의 실패를 통해 하나님은 또 다른 기회를 여십니다.

우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절망은 우리의 욕심과 버려야할 것 때문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사명과 목적, 그리고 그분의 마음이 포기된 것은 아니죠.

오히려 우리가 절망의 나락, 마지막인 것처럼 여겨지는 고난은 하나님의 마음과 기회의 또 다른 시작인지도 몰라요.

우리에게 주어진 실패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가 버려야할 것들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패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포기가 아니죠.


12.

우리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에요.

믿음은 내가 절망하거나 실패했을 때, 바다 한 가운데 빠졌을 때에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떤가요?

여러분이 절망적인 상황 앞에 놓였을 때 믿음은 어떻게 작용하나요?

또다시 기회가 있다는 믿음으로 작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13.

저는 수없이 많이 실패했고, 지금도 실패하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제게도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절망이 없지 않았어요.

아프고 쓰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제가 놀라운 성과를 낸 사람은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그 과정 가운데 배우고, 자라는 것이 있는데요.

그 중 중요한 하나를 나누자면 이런 것입니다.

그런 실패를 경험하면서 “예민하지 말자”는 거였어요.

너무 “진지하지 말자”는 거죠.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절망 앞에서 너무 진지했드랬어요.

아픔과 고난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것이죠.

그랬더니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진지함의 극치는 포기였습니다.


14.

사랑하는 여러분,

실패 앞에서 너무 진지하지 마세요.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세요.

오히려 조금 유머스럽게 상황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습게 받아들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구요.

웃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어떤 결과가 오는 줄 아세요?

경직되고 분노하게 되어 있어요.


15.

가령 누군가 농담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유머로 받았고, 어떤 사람은 진지하게 받았어요.

아마도 반응은 극명하게 다를 것입니다.

유머러스하게 받은 사람은 말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데 반해 진지하게 받은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는 더 나아가 분노하고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아서 나의 사랑을 방해하죠.


16.

창세기 3장의 인간이 범죄하는 과정을 읽다보면 여러 생각이 듭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 속삭이잖아요.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유혹하죠.

저는 그때 하와가 조금만 유머 있게 반응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아니, 됐어!”하고 웃었으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너무 진지하게 그 문제를 다뤄 버렸어요.


로마서16:19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롬16:19     나는 여러분이 선한 일에는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순진하기를 바랍니다. 

악한 일에 순진하라는 구절의 순진은 개역개정본에는 미련이라고 되어 있죠.

헬라어로 [아케라이오스]인데요.

이 뜻이 ‘섞이지 않은’, ‘꼬이지 않은’ 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예민하거나 진지하게 받지 말라는 의미죠.  


17.

옛날이야기인데요.

제가 피정 기간에 기도원에 일주일 다녀왔어요.

돌아오는 날 집에서 아내가 저를 맞아 주었는데요.

보통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제게 허깅을 해 주거든요.

그런데 아내가 허깅을 하다가 움찔 하는 거예요.

봤더니 제 양복 오른쪽에 화장품이 묻어 있는 거죠.

아내는 이거 뭐야? 하고 가볍게 말하고는 그냥 넘어 갔어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안절부절 못한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화장품이 왜 묻었는지 제가 모르겠는거 있죠?

꼼짝없이 오해를 받게 생겼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 거에요.

그런데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만 고심에 빠졌어요.

밤까지 고민했는데요.

밤중에야 생각이 났어요.

제가 갔던 기도원에 필리핀선교단이 같이 묶고 있었어요.

그 선교단은 아마도 기도원측 교회에서 초청을 한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돌아오기 전날 저녁 선교단이 작은 공연을 한다는 거에요.

저도 갔는데요.

로비에서 그냥 거리 공연처럼 공연을 했어요.

그때, 함께 한 사람들이 20명 남짓 적었기에 빙 둘러 공연을 봤어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 같이 기도하고, 서로 돌아가면 인사와 허깅을 한 건데요.

그때 묻었던 거죠.

그것을 다음날에서야 아내에게 말했는데요.

오히려 아내가 더 이상하게 나를 보는 거예요.

“왜 그런 이야기 하냐고? 나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더 민망해졌어요.

그러면서 아내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내가 모든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얼마나 의심할 일이 많겠어요.”

“믿음은 의심되는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 지켜지는 거예요.” 


18.

우리의 절망이 끝이 아니에요.

우리의 낙심한 그 자리가 끝이 아니에요.

우리는 절망을 대면할 때 유머러스하게, 심각하지 않게 대할 필요가 있어요.

대신 하나님의 사명 앞에서 진지해야 하죠.


19.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기회는 다시 옵니다.

또다시 하나님의 사명은 우리에게 주어지고요.

또다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에게 미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아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기회는 다시 우리에게 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기회는 우리에게 옵니다.

그래서 믿음은 고난 가운데 빛나는 거에요.


20.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말고 습관적으로 자신에게 말을 거세요.

“좋아! 내가 여기서 배울 점은 뭐지?”

“다시금 기회를 주실 거야!”


이런 절망적 시국 가운데서도 주님은 대한민국에 다시 기회를 주실 거예요.

이렇게 망가질 대로 망가진 권위에도 주님은 다시 기회 주실 거예요.

삐뚤어진 한국교회에도 주님은 다시 기회 주실 거예요.

엉망진창인 나의 인생도 주님은 다시 기회를 주실 거예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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