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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나서묵상

새로워지려면 갈아엎어야 한다

[요나서묵상06] 새로워지려면 갈아엎어야 한다. 


욘3:3~9

3    요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둘러보는 데만 사흘길이나 되는 아주 큰 성읍이다.

4    요나는 그 성읍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

6    이 소문이 니느웨의 왕에게 전해지니, 그도 임금의 의자에서 일어나, 걸치고 있던 임금의 옷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다.

7    왕은 니느웨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하여 알렸다."왕이 대신들과 더불어 내린 칙명을 따라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무엇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된다.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

9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

벌써 12월이 되었습니다.

2016년을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네요.

어른들껜 죄송한 말씀이지만 50이 넘으니 세월이 2배 빨리 가는 것 같아요.

이렇게 2016년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고 보니 아쉬움만 쌓입니다.

다짐하고 결심했던 일들이 아직도 산더미 같은데 시간은 훅 지나가네요.

세월이 참 야속합니다.


2.

12월이 되니 떠오르는 시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시인 이해인수녀의 12월의 시인데요.

오늘 설교는 이 시 낭독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들어보시죠.

 

3.

12월의 시       - 이 해 인 -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 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 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들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 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싶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 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4.

이해인수녀의 말처럼 우리는 가는 세월 앞에서 옛날을 묵상하지 말고, 오는 세월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12월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5.

저희는 지금 요나서를 읽고 있는데요.

12월까지 요나서를 다 읽게 되겠죠.

우리는 요즘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이게 나란가? 하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연일 벌어지죠.

우리의 삶은 즐거움이나 희망을 잃은지 오래 된 듯해 보입니다.

교회와 신앙 또한 활기를 잃었고요.

그러다보니 마치 세뇌하듯 신앙교육이나 프로그램에 몰두하죠.

저는 목회를 하면서 자괴감이 많이 듭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속은 빈수레인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이죠.

그들의 긍휼은 비어있고, 사랑은 말라있으며, 가치관 또한 뿌리가 없어요.

그러면서도 허울뿐인 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6.

우리는 최근 요나를 다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길을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동안 우리는 이 땅에 보내진 자이며, 또한 외치는 자라는 사실을 나누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감사와 인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요나에게 길을 묻는 6번째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새로워지려면 갈아엎어야 한다는 제목입니다.


7.

드디어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니느웨로 갑니다.

아시다시피 니느웨는 앗시리아의 수도이죠.

영어 발음은 니네베이고요.

창10장에서는 여호와 앞에 용감한 사냥꾼 니므롯이 건설한 도시로 나오죠.

오늘날 이라크 북부 모술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바로 이곳인데요.

이라크에서 수도인 바그다드 다음으로 큰 도시이며 경제 중심지입니다.

현재는 이슬람국가 IS의 근거지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불가능한 지역이죠.


8.

요나서 3장에 따르면 니느웨는 아주 큰 성이라고 했습니다.

둘러보는 데만 3일이 걸린다고 되어 있어요.

새번역에는 그냥 아주 큰 성읍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개역개정판에는 하나님 앞에서 아주 큰 성읍이라고 되어 있지요.

히브리적 표현에는 하나님이나 여호와와 결부된 수식어들이 있는데요.

이것은 히브리 문학적 표현으로 매우 크고 강한 것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죠.

우리말로는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와 같은 이런 표현에 속하는 거죠.


9.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니느웨는 앗시리아의 수도입니다.

앗시리아는 요나의 나라 북 이스라엘과는 철천지 원수인 셈이죠.

그러니까 요나는 적국 한 복판에 들어간 것입니다.

진짜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직면한다면 참 많이 떨렸을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중국에 갈 때 그렇게 떨렸어요.

중국과 한국이 수교하던 해에 들어갔는데요.

처음 느끼는 중국은 정말 죽의 장막 같았거든요.

당시 백화점 상점에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물건을 팔았어요.

북한은 말할 것도 없겠죠.

중국과는 다르게 북한은 안전이 보장된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어요.

정말 오금이 저리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저는 좀 알 것 같아요. 

어쩌면 요나가 그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것 있잖아요.

뭔가 두렵고 떨리면 더 커 보이고, 강해보이고, 무서워 보이는 거요.

아마도 요나 앞에 놓인 니느웨는 그렇게 컸을지도 모릅니다.


10.

우리 앞에 놓인 세상은 요나 앞에 놓인 니느웨처럼 커요.

내가 넘을 수 없을 것 같고, 쉽게 오르지 못할 것 같기도 하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의 힘은 더 강하다는데 있어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넓고 더 깊은 위험이 도사리죠.

우리가 다 알고, 다 경험하고, 다 느낄 수 없을 만큼 어쩌면 더 강한 것이 이 땅의 세력일지도 모릅니다.

가끔 저는 우리가 얼마나 속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디어에 속고, 여론에 속고, 심지어 우리가 진리로 믿는 지식에도 속아요.


11.

예전에는 지구가 편편하다고 믿었었죠.

평평한 지구 Flat Earth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항해를 하면 마지막에는 낭떠러지라고 믿었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이야기죠? 

그런데 평평한 지구를 주장하는 이들이 최근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 가운데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들은 평평한 지구학회라는 것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몇 가지 상황으로 평평한 지구를 주장하는데요.

남극을 탐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비행기 노선 등을 예로 들죠.

진짜 웃기는 이야기죠?

그런데 그것을 믿는 과학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있어요.

문제는 이런 황당한 사실을 기원후 16세기까지 모든 이들이 믿었다는 거죠.

중세교회는 천동설을 근거로 지동설을 주장하는 이들을 처형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과학이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다는 아닌 셈이죠.


12.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탄은 만만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아무리 용감하고 단호하게 사탄을 대적한다해도 이길 수 없어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이름으로 이기게 하신 것이죠.

세상을 경험하고 살면서 아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진정한 사실이 아닐지도 몰라요.

여러분이 아는 것이 고작 책이나 신문, 방송에서 보는 것 아닙니까?

책이나 신문, 혹은 방송이 잘못되었다면요? 사실이 아니라면요?

어쩌면 옛날보다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오늘 더 속이기 쉬운지도 몰라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을 진리로 믿는 경향이 많거든요.

물론 직접 경험하면서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경험이 전부 다 일수 있을까요?

소위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이야기처럼 우리의 경험은 일부분일 수 있죠.

그것에서 사실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얼마나 세상을 만만하게 보는지 생각해보세요.


13.

저는 가끔 어떤 문제 앞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이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 가운데는 왜 나에게만 이런 문제가 오느냐고 해요.

왜 해도 해도 해결이 안 되냐고 물어요.

그리고 포기하기를 반복하죠.

그런데 저는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어요.

“당신이 싸워 쉽게 이길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게 정말 강한 존재일까?”라고 말이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이길 수 있는 존재라면 그것을 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그런 불평들 사이에는 세상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아닌가요?


14.

저는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최근에는 손이 잘 안 돌아가서 쉽게 하던 것들을 계속 실수하기도 해요.

그런데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도전하다가 몇 번 실패를 해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신경질 나서 때려 치워요.

반대로요.

제가 목표한 것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면 몇 번 실패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 아세요?

이렇게 쉽게 되는 것이라면 아무나 다 했겠지... 이런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계속 도전하면서 배워가죠.

왜?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아니까요.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세상 고민 가운데, 신앙 가운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몇 번 해보다가, 몇 번 고민하다가 낙망하고 절망하는 이유가 뭐죠?

세상을 너무 쉽게 보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이 몇 번 쯤 하면 세상이 저절로 굴복해줘야 합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대단하고, 그렇게 처절히 노력했나요?

젊은이들에게 말씀드려요.

신앙적 고민이 많데요.

믿어지지 않는데요.

정말 믿고 싶기는 해요?

그래서 성경을 한번이라도 완독해 보셨어요?

적어도 1년에 2~3권의 신앙서적을 읽어보기는 했나요?

고민 해결을 위해 나와 다른 이들과 투쟁하며 토론해 보셨어요?

왜 그렇게 쉽게 세상을 정복하려고 하세요?

왜 그렇게 세상을 쉽게 봐요?

창조주이신 삼위일체 예수님도 세상을 십자가로 이기셨어요.

죽음으로 이기시고, 고난으로 이기셨다고요.

세상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알량한 혼자만의 개똥철학으로 세상 못 이겨요.

같이 힘을 합하고, 같이 도우며 기도하고, 협력하여 사랑하며 이기는 거예요. 

 

15.

지난 감사주일, 오프라 윈프리에 대해 말씀드린 적 있지요?

그가 한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어요.


가진 것이 사명이다.

부담감이 사명이다.

아픔이 사명이다.

내게 사명을 갖고 살아가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

- 오프라 윈프리 -


16.

내성을 좀 키워요.

생각과 가치관의 실력을 키워요.

사탄에게 나의 논리를 정확하고 조리 있게 말하며 대적할 실력을 키우세요.

세상 만만하게 보지 마세요.

그냥 나의 말 실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예요.

당신의 영적 실력을 키우셔야 해요.


17.

이제 요나는 니느웨를 3일 동안 돌아보고,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니느웨의 멸망을 외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돌아보는 데만 3일이 걸리는 니느웨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역을 하룻길만 했다는 점입니다.

이상하죠?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를 한번 유추해 보세요.

가장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요나가 대충 사역을 하였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죠?

하루만 다닌 거죠.

그런데 이 유추는 좀 아닌 것 같아요.

모진 풍파 끝에 이제 마음잡고 니느웨까지 왔는데 대충한다는 것은 아니죠.

그렇다면 다른 유추를 해야 하는데요.

한 가지가 더 있겠죠?

요나가 하루밖에 사역을 하지 않았는데 반응이 온 거죠.

3일간 누비고 다닐 필요도 없이 하루만 했는데도 도시가 폭발을 한 거죠.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잖아요.

요나는 시작했더니 끝나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죠. 


18.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이 어려우세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려우시죠?

왜 어렵냐면 3일 길을 다녀야 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런데요.

하나님의 일은 도우시는 분이 계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일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죠.

세상의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쉬울 수 있다는 거예요.


19.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제 경험이 미천해서 이 이야기를 이미 들으신 분이 계실 거예요.

제가 반복하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제가 군대를 마치고, 전도사로 어느 교회에 부임했어요.

그런데 그 교회는 주일 저녁마다 청량리 광장으로 노방전도를 나갔어요.

물론 저는 청년들과 함께 찬양인도와 리더로 참여했는데요.

사실 그렇게 노방에서 전도를 많이 해 본 경험은 없거든요.

찬양을 하고, 청년들이 거리로 나가 전도를 했어요.

다행인 것은 제가 찬양인도자라 저는 안 나가도 되었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청량리 광장에는 술 취한 노숙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한 노숙자가 눈에 띄었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찬양하는 곳 맨 앞에 와서 등을 돌리고 눕잖아요.

너무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런데 찬양하는 내내 그분이 눈에 밟히는데 아무도 그에게 안 가는 겁니다.

저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어요.

누군가 가겠지? 나는 찬양해야 하니까 내려갈 수가 없어.... 등등

내려가 복음 전하다 실패하면 전도사가 무슨 창피에요^^

그런데 너무 강하게 마음에 부대껴 다른 이에게 찬양을 맡기고 내려갔어요.

그리고 아저씨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대답이 없었어요.

귀찮게 하지 말라고 소리 칠까봐 좀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요. 

그래도 다시 두세번을 더 불렀어요. 

“아저씨”

여전히 대답도, 돌아보지도 않았는데 그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더 가까이 아저씨에게 다가갔더니 아저씨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나 같은 놈에게는 아무도 안 올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다고...”

저는 한마디 복음도 전하지 않았는데요.

그분은 그 다음 주에 교회에 와서 영접하고 교회 교인이 되었어요.

나는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말이죠.


20.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3일 길이 걸려요.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하루도 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인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이죠.

주님의 편에 서는 것이 어렵다 느끼는 것은 우리가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죠.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시작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시작하세요.


21.

이제 오늘 나눌 마지막 말씀입니다.

요나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욘3:4,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그랬더니 니느웨 백성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베옷으로 갈아입고, 자신들이 가진 습관들을 버리기 시작했죠.

놀라운 일이죠.


22. 

농부들은 새마다 새로이 개간을 합니다.

옛 땅을 갈아엎습니다.

그런데 땅을 왜 갈아엎는지 아세요?

농촌에서 자란 분들은 아실 거예요.

새벽에 갈아엎은 논을 보면 하얀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땅이 숨을 쉬는 것 같아요.

땅이 숨을 쉬기 위해서 갈아엎는 것이죠.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옛것을 버리고 갈아엎어야 해요.

회개는 부분적인 것이 아니에요.

상처의 한 부분을 도려내거나 막는 것이 아니고요.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고, 묵은 것을 갈아엎는 것이죠. 

회개를 헬라어로 메타노이아라고 합니다.

메타는 바꾸다는 의미이고, 노이어는 생각, 마음이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회개는 생각과 마음을 갈아엎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책을 책상에 올려놓고 가만히 놔둬보세요.

며칠이 못가서 먼지가 뽀얗게 쌓일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한가지입니다.

책을 열심히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에요.

잘 시작했고, 잘 정돈된 마음이지만 쓰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듯 퇴색되죠.

이것을 우리는 매너리즘이라고 하기도 하죠.

영적인 매너리즘은 더 심각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다고 선언한 그 첫사랑이 아직 온전합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굳지는 않았어요?

그 굳은 신앙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생각과 고백이 있어야 해요.

주님과 다른 대화를 해야 합니다.

똑같은 기도가 아니라 새롭고 변한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해요.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접근하는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부부간에 대화가 왜 단절되는지 아세요?

똑같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늘 똑같기 때문이죠.

맨날 아프다, 속상하다, 괴롭다, 죽고싶다만 말해 보세요.

내용이 달라져야 합니다.

생각이 자라고, 마음이 자란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의 생각이 자라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리지 않아요.

우리의 마음을 갈아엎지 않으면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는 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새로워지려면 갈아엎어야 합니다.

영혼이 숨을 쉬려면 부드러워져야 해요.

어떤 상황이나 환경, 반응에 나의 마음이 굳어 있다면 숨이 쉬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습니다.

개간하셔야 해요.

옛 신앙도 버리고, 내가 믿고 따르던 것도 버리고, 반응해야 해요.

니느웨처럼 말이죠.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겔36:25~27    내가 너희에게 맑은 물을 뿌려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며, 너희의 온갖 더러움과 너희가 우상들을 섬긴 모든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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