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묵상56 - 이웃은 나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019. 4. 1. 07:45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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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9:14-21

 

4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독 4월에 많은 사건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4월 3일이 그랬고,

4월 16일이 그랬고,

4월 19일 또한 그랬습니다.

그래서인지 ‘잔인한 4월’이라 불리나 봅니다.

그러나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처음 등장하는 ’잔인한 4월’은

얼어붙은 땅에서 싹트지 못한 씨앗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담겼습니다.

기대했던 새싹을 틔우지 못한 봄,

언 땅을 녹이는 푸는 생명이 드러나지 않는 4월,

그것이 잔인한 4월인 셈이죠.

한때 겨울이었으나,

한때 얼었으나,

다시 한번 그 겨울을 뒤로하고 푸른 생명이 소생케 하는

4월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무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봄은 반드시 옵니다.


제가 학창 시절 좋아했던 노래가 있습니다.

작은 연못이라는 노래입니다.

약간은 애잔하고 슬픈 노래였는 데요.

가사는 이렇습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작은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하나님의 공의는 경쟁이 아니라 상생입니다.

주님의 법률이 강력한 것은

상생과 공존의 이유 때문이죠.

남자와 여자를 두신 것은 경쟁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을 두신 것은 서로 격려와 위로, 섬기기 위한 것이죠.

하나님의 규율과 법규는 이에 기초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깨집니다.

남자와 여자가 경쟁하며 싸우죠.

민족과 민족이 싸우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다툽니다.

그 싸움은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죠.

그러나 그렇게 싸워 이기면 승리할 것 같지만

결국 작은 연못의 비극처럼 되고 말죠.

나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면 나도 죽습니다.

내 목숨을 위해 누군가를 음해하면,

내 목숨 또한 음해를 받아요.


하나님의 공의는 경쟁이 아닙니다.

그 공의는 배려와 사랑입니다.

성장은 경쟁이 아니라 배려와 사랑으로 이루어지죠.


오늘 본문에는 몇 가지 원칙이 나옵니다.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이야기,

이는 타인의 배려하라는 뜻입니다.

위증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죠.

유불리를 위해 남을 음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은 유명한 말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나오죠.

이 말씀은 똑같이 갚아주라는 의미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문자 그대로 하면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 전체 문장에서 읽으면 어떨까요?

남을 배려하고, 서로를 존중하라는 메시지 안에서 읽으면요?

함부로 남을 헐뜯지 말라는 의미에서 읽는다면요?

그렇다면 이렇게 읽히지 않을까요?
“너도 똑같이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분이 단순히 하나님이어서가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배려하시기 때문이죠.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피조물이고,

비록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런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존중하시는 거죠.

같이 하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고 싶으시기 때문이죠.

이웃은 도움이 되라고 주신 것이지 불편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쓴 약을 주면 아이들이 다 싫어하죠?

쓰기 때문에 싫을 수는 있습니다.

나와 안 맞아서 힘들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약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기에 주어진 것이죠.

이웃이 그렇습니다.

잘 안 맞고, 불편할 수는 있어도,

이웃은 나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아야 해요.


오늘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러분이 만나는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로,

그것도 나를 위해 주신 선물로 여기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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