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묵상55 - 하나님의 사랑도, 그 은혜도, 찾는 사람에게만 유용합니다.

2019. 3. 30. 07:23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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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9:1-13

 

며칠 전, 뉴스에서 인터뷰 하나를 보았습니다.
3년 전, 글로벌 기업인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소위 햄버거 병이라는 용혈성 요독 증후군에 걸려
신장의 90%가 기능을 잃고 매일 밤 투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의 어머니 최은주 씨의 인터뷰였습니다.

이 일은 법정으로까지 이어져 2년 넘게 재판이 진행되었고,
피고 측인 맥도널드는 증거 불충분으로 작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햄버거의 패티가 오염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 오염된 패티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맥도널드 측에서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매출을 높이기 위해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세균으로 오염된 패티를 처분하지 않고 계속 사용했던 거죠.
그러고도 오염된 패티는 일괄 처분했다고 서류를 조작한 것입니다.

최은주 씨의 인터뷰에서
맥도널드 측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더군요.
심지어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시할 때도
당사자인 자신과 가족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아픈 딸이 엄마에게 사과를 했답니다.
“엄마, 내가 욕심부려서 햄버거를 한 개 다 먹어 미안해…”

오늘 본문은 도피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도피서에 관한 말씀은 이 본문뿐만 아니라
출애굽기에도, 민수기에도 언급됩니다.
작년 12월인가요?
우리가 민수기를 묵상하면서 도피성에 대한 말씀도 적은 적이 있습니다.
도피성에 대해 궁금하시면 그때 묵상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래요.
다만, 오늘은 도피성이 세워진 목적이나 배경보다
도피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야말로 도피성은 죄를 짓고 피하는 곳입니다.
물론 죄의 고의 유무가 중요하지만,
도피성은 용서를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곳입니다.
용서의 문이 열린 것이죠.
그렇다면 왜 굳이 도피성을 만든 것일까요?
죄를 지어도 용서받는다면, 그냥 죄가 죄가 아니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죄를 지어도 용서받는다면, 차라리 죄라는 것을 만들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죄를 용서할 바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굳이 죄라는 것을 만들고,
또 그것을 피할 장소를 만들어 용서하고,
이런 복잡한 과정을 겪을 이유가 무얼까 하는 의구심 안 드시나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런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죄의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도피성의 존재 유무가 아닐지 몰라요.
죄를 지어도 도피성에 가지 않으면 도피성은 존재 이유가 없으니까요.
어쩌면 도피성을 두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죄에 대한 인식 인지도 모릅니다.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의 마음을 후벼 파고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고백이 존재할 때입니다.
죄에 대한 인식과 고백이 없으면 용서도 없습니다.
죄에 대한 아픔과 회개가 없으면 용서도 없어요.
도피성은 고백과 회개를 가진 자에게만 유용합니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돌이키는 자에게만 보여요.
그러지 않은 자들은 도피성에 찾아가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강퍅한 자들은 도피성이 보이지 않죠.
도피성은 그런 것입니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실수는 누구나 하죠.
잘못이나 실수가 치명적 죄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치명적인 죄는
그 잘못과 실수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어요.
자신의 죄를 바라보지 못할 때,
그래서 자복하고 자백하지 못할 때,
회개 또한 없을 때,
그것이 가장 치명적인 죄입니다.
그 죄에 휩싸이면 용서받은 기회를 놓칩니다.
도피성을 찾지도 않습니다.

도피성은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도, 그 은혜도,
찾는 사람에게 유용함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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