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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실수해도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민수기 35:22-34 실수해도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구약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만약 살인을 저질렀다면 죽음으로 살인의 죄를 갚아야 했죠.
그 살인으로 인해 절망한 유가족들의 보복이 정당화되었습니다.
물론 살인의 상처를 또 다른 살인으로 갚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는
온당한 처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구약의 법칙 안에는 상처를 입은 자, 피해를 본 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기본적인 원리가 깔려있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이어집니다.
중동지역에는 아직도 여전히 이 원칙이 자행되죠.
도둑질하다가 잡히면 훔친 손목을 자르고,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이죠.
법적 처벌이라는 것이 이 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잘못한 만큼 갚아야 하죠.
참혹한 살인을 저지른 자는 사형에 처하는 경우도
이 원칙이 적용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도피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레위지파는 다른 지파와 달리 땅을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다른 지파들의 나눔으로 땅이 주어지죠.
그렇게 얻은 성읍이 48개입니다.
하나님은 그중 6개를 도피성으로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도피성이란 실수로 인해 죄를 지은 자들이 피신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예를 들어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실수로 상처를 입은 유가족들은 그에게 죽음의 보복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실수를 한 이가 보복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요.
그것이 도피성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실수를 용서받을 방법이 생긴 것입니다.

다른 문헌에 보면 도피성을
어느 곳에서든지 하룻길 안에 갈 수 있는 곳에 두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가는 길은 될 수 있는 대로 넓혀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게 만들었고,
가는 길마다 도피성이라는 푯말을 만들어 찾기 어렵잖게 했다는군요.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우리는 실수합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때론 나도 모르는 사이 죄를 짓기도 하고,
죄인 줄 알면서도 한순간의 유혹과 욕망에 넘어가기도 하죠.
우리가 그런 죄 가운데 놓일 때
그때마다 처벌을 받았다면 우리는 목숨이 백 개여도 이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긍휼 없이는 우리는 한순간도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분이 나의 도피성이 되어주지 않으신다면
오늘도 보복자의 위협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나를 넘어뜨리려는 영들의 괴롭힘에 스스로 쓰러질지도 모르죠.

여러분은 실수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아름답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세요.
할 수 있는 대로 끝까지, 힘써 의롭게 사세요.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기에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존재임도 인정하세요.
그렇게 실수하고 넘어져도 우리가 피할 방법이 있음을,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그분이 계심을 기억하세요.

나의 실수로 절망하지 마세요.
죄가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은 용서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 때문입니다.
우리의 절망이, 우리의 낙심이 죄가 힘 있는 존재가 되게 만듭니다.
우리의 실수에 대한 낙담이 죄가 살아 움직이게 만들죠.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의인이 아닙니다.
그런 의인은 우리 중에 하나도 없습니다.
실수해도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사람이 의인이에요.
연약하여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의인이고요.
하나님은 그런 이들을 기다리십니다.
주님을 도피성으로 삼아 다시 회복되는 이들을 반기시죠.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돌보심을 받는 하루이길 빕니다.
가까운 곳에 주님이 계시고,
손을 뻗어 잡을만한 곳에 주님이 계시는 하루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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