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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가나안은 우리의 이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뜻을 품고 사는 곳입니다

민수기 32:16-27 가나안은 우리의 이익이 나는 곳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뜻을 품고 사는 곳입니다.

아직 가나안의 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르우벤과 갓지파는 가나안을 들어가기 직전에
길을 멈추고 자신들이 보이게 좋아 보이는 땅을 요구하죠.
이에 모세의 그들의 의도에 분노합니다.
어제의 본문이죠.

모세의 분노와 따끔한 충고 앞에 그들이 보인 태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수정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수정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르침이나 충고 앞에
어떤 태도로 서있는가 하는 것니다.
그들은 자신의 뜻과 마음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의 수정안은 자신의 마음을 고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타협일 뿐이죠.

이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까요?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충고 앞에
진정으로 나의 생각을 바꿀까요?
혹시 분명히 잘못임을 알면서도
그래도 나의 생각을 바꾸기보다
주님이 생각을 바꾸시도록
여전히 수정안을 내면서 버티지 않나요?

르우벤과 갓의 수정안은 그럴싸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들이 안전하게 땅을 차지한다면,
장정들은 가나안 정복의 선봉장이 되겠다고 하죠.
멋진 말입니다.
누구보다도 최선을 대해 전쟁에 임하겠다는
다짐처럼 보이니까요.
그런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다짐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기도에는 이런 식의 다짐들이 있죠.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 주시면, 열심히 신앙생활하겠습니다.’
‘좋은 직장 주시면, 주님께 헌신을 다하겠습니다.’
그 결과는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전쟁은 목숨을 거는 위험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장 선봉에 서겠다는 것은 쉬운 다짐이 아니죠.
그러나 제 아무리 목숨을 걸어도 의도가 잘못된 것이면
그것은 결과도 잘못됩니다.
가치관이 다르면 아무리 참돼 보여도
그 가치관대로의 결과를 낳죠.

르우벤과 갓은 가나안에서 누구를 위해 싸우겠습니까?
아니 지금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누구를 위해 싸웁니까?
하나님은 그토록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생각을 성취하는 존재로
거듭남을 강조하시며 인도하셨는데요.
그래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기 위한 여정이죠.
그런데 르우벤과 갓은 그 여정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와 재산 때문에 싸우는 거죠.
전쟁터에 나온 목적이 두고 온 가족과 재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가치관이 다르면 다른 결과를 냅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신앙 생활합니까?
무엇을 위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죠?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소유와 이익 때문인지가 극명히 갈라집니다.
하나는 사명이 되고, 하나는 미신이 되기 때문이죠.
아무리 열심을 내도, 아무리 헌신을 해도,
나의 의도가 육적이면 결과도 육적입니다.
목적이 다르면 헌신과 봉사의 일을 해도 이익을 위해 하고요.
의도가 영적이면 사업을 해도 열매를 맺습니다.

아시다시피 르우벤과 갓이 원한 땅은 가나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 아니죠.
우리의 눈에는 같아보여도, 비슷해 보여도,
엄연히 다른 땅입니다.
겉으로는 다 똑같아 보여도,
동기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면 결과도 다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가나안이에요.
가나안은 우리의 이익이 나는 곳이 아닙니다.
가나안은 내가 주님의 뜻을 품고 사는 곳이죠.
가나안은 내 꿈이 펼쳐지는 곳이 아닙니다.
가나안은 나를 통해 하나님의 꿈이 펼쳐지는 곳이죠.
그래서 가나안입니다.
비슷해도 같은 땅이 아니에요.
여러분은 꼭 가나안에 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딛고 서 있는 지금, 그 땅은 가나안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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