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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탐욕은 가장 먼저 얻는 것 같지만 가장 먼저 빼앗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민수기 32:28-42 탐욕은 가장 먼저 얻는 것 같지만 가장 먼저 빼앗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한 가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란
우리의 순종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수고를 동반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도 마찬가지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이지만
우리의 수고가 있어야 차지합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서 무언가를 얻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하고,
목숨까지 걸면서 수고를 다해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의 수고로 얻은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극명하게 갈릴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말이죠.
세상적 가치관의 입장에서 보면 대답이 너무 쉽습니다.
나의 힘으로 얻은 것이니 당연히 나의 것이죠.
반면, 하나님을 아는 이들은 다릅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하여도 주님 없이는 얻을 수 없음을 압니다.
나의 수고 또한 주님의 허락하심임을 압니다.
나와 주님이 함께 일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나의 수고로 얻은 것이어도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죠.

이것이 가치관의 차이이고,
이것이 믿음의 차이입니다.

오늘 본문은 갓과 르우벤 지파에게 땅이 분배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국은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는 순간이죠.
이전 본문과 다른 점은
여기에 므낫세 지파가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므낫세 지파 가운데 일부는
갓과 르우벤의 생각에 동조를 했던 모양입니다.
다른 성경의 평행본문(같은 사건을 기록한 본문)에 보면
므낫세 지파도 같이 등장하죠.
그러나 민수기는 갓과 르우벤 지파만 나오다가
오늘에서야 므낫세 지파가 등장합니다.
아마도 이 사건은 갓 지파가 주도했던 것 같습니다.
르우벤은 이미 전력이 있어서 조금 뒤로 빠졌던 것 같고요.
어쩌면 갓 지파를 앞세웠는지도 모르죠.

옛 말에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있죠.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사람을 입지 않으면
제 버릇은 언제나 기회가 있으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두고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죠.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갈라디아서2:20)

반면, 므낫세는 소극적으로 동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국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적극적으로 변한 모양새죠.
이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땅을 요구한다는 게
쑥쓰러웠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적극적으로 요구에 동참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이제는
적극적으로 돌변합니다.
므낫세 지파의 처세가 놀랍습니다.
눈치를 본 것이죠.
그러다 기회가 오니 적극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므낫세의 처세가 가장 나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처세술에서 우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분명히 잘못된 일인 줄 알지만
진급을 위해 불법을 눈감죠.
처음에는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불법이 드러나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리를 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법이 먹히고, 더 나아가
이익을 만들어 준다고 여겨지면
누구보다도 발 벗고 적극적으로 나서죠.
이것이 처세입니다.

오늘 본문은 므낫세의 자손들이 땅을 차지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눈에 띄는 기록은 그들이 땅을 차지한 이후
그 땅의 지명을 바꾸는 장면입니다.
야일은 하봇야일(야일의 마을)이라고 명하고요.
노바는 아예 자신의 이름으로 지명을 바꾸죠.
이는 마치 아버지 다윗을 내쫓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했던 압살롬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자신의 이름을 딴 기념비를 세우는 일과
오버랩이 됩니다.
마치 자신이 이룬 업적인 듯 말이죠.

우리에게서 하나님이 빠지면
모든 것이 나의 업적이 됩니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이 빠지면 모든 것이 내 것이 되죠.
욕심은 그렇게 일어나고, 교만은 그렇게 싹틉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훗날, 이스라엘은 종국을 맞이합니다.
그때 가장 먼저 앗시리아로부터, 바벨론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끌려간 이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이들입니다.

욕심은 그렇습니다.
탐욕이 그렇습니다.
가장 먼저 얻은 것 같으나
가장 먼저 빼앗기는 것입니다.
가장 많이 얻은 것 같으나
가장 처참하게 빼앗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장 늦은 것 같지만
가장 먼저인 것을 사모하세요.
가장 적은 것 같지만 천국에서는 가장 큰 것,
가장 낮은 것 같지만 하나님에게는 가장 높은 것,
그것을 소망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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