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363 - 마음이 닫히면 시각이 좁아집니다.
2025. 8. 8. 05:00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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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3:1~5 그들 온 무리가 일어나서, 예수를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다. 그들이 예수를 고발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우리 민족을 오도하고,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고, 자칭 그리스도 곧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는 아무 죄도 없소."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그 사람은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를 누비면서 가르치며 백성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약간 무더위가 주춤한 것 같죠? 밖이 아직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는데요. 창 너머로 어렴풋이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바람이 부는 모양입니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아침 공기를 마시며, 오늘을 주신 주님께 감사로 시작하는 아침 되시길 빕니다.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는 모습입니다. 어젯밤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유대 공의회에서 신성모독죄로 몰린 예수님께서 이제는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 서셨습니다. 밤새도록 이리저리 끌려다니시며 모욕을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고난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유대 지도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제 그들의 남은 숙제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로마 총독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덮어씌운 죄목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유대 율법에서는 죽어 마땅한 죄였지만,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죠. 로마법상 신성모독은 사형에 이를 만큼 중한 죄가 아니었거든요. 아마 태형 정도로 끝날 문제였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태형에 처하고 풀어줄 생각이었죠. 그러자 유대인들은 재빨리 죄목을 바꿉니다.
누가복음서 22:2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우리 민족을 오도하고,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고, 자칭 그리스도 곧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은 로마 제국의 식민통치 핵심 중 하나였습니다. 세금 반대 운동은 곧 로마에 대한 반역 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은 세금 문제에 반대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히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셨죠.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꾸며댔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누군가 하나의 잘못을 하면, 그가 이전에 행했던 모든 선한 일들을 부정하고 그의 모든 것을 비난하려 듭니다. 심지어 드러난 잘못 위에 증명되지 않은 온갖 거짓들을 덧씌우는 경우도 허다하죠. '카더라 통신'이라고 불리는 가짜 뉴스는 이미 드러난 죄 이상으로 온갖 악한 상상력과 거짓을 양산합니다. 그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상대방은 '죽을 죄인'으로 낙인찍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로부터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수한 사람에게 그 실수를 딛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거짓 고발과 악한 상상력, 조롱과 비난은 그 길을 가로막는 장벽이 됩니다.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라 했습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잘못이다’라는 뜻이죠. 잘못을 고칠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습니다. 그들이 거대한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식민지 현안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식민지를 얻었다 해도, 그곳의 민심을 잃고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오히려 제국의 안정을 해치는 악재가 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정말 로마의 세금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셨다면, 유대인들보다 로마 정부가 훨씬 더 빨리 그 사실을 알아챘을 겁니다. 그게 바로 로마의 식민 통치 노하우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이 죄목으로도 예수님을 처형하기를 망설이자, 이번에는 더 민감한 문제를 들고 나옵니다.
누가복음서 22:5 "그 사람은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를 누비면서 가르치며 백성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소위 민란(民亂)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민란은 로마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불과 몇십 년 뒤인 기원후 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초토화시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유대 지방에서 일어난 민란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죄목을 거짓으로 만들어내며 빌라도를 압박했던 것이죠.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제사장과 유대 지도자들의 시선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죽어 마땅한 죄인으로 보였습니다. 반면, 빌라도의 눈에는 아무 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겠소”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똑같은 사람, 똑같은 사건을 두고 왜 이렇게 다른 시각이 존재할까요? 물론 빌라도가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다만 한 발짝 물러서서 문제를 바라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두고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나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마음이 닫히면, 시각이 좁아집니다. 나의 이익에만 몰두하면 큰 그림이 보이지 않아요. 당장의 달콤함에 빠져 있으면 내 몸이 서서히 병들어가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절대로 안 되는 일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까? 그 문제는 나의 발목을 잡는 일일까요? 아니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기회입니까? 누군가를 죽일 일입니까? 아니면 살릴 일입니까?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의 창이 얼마나 열려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넓은 시야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고사성어 중에 [관원지명(觀遠知明)]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 보면 밝게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호흡도 크게 쉬어야 하듯이, 세상도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넓게 바라보십시오. 마음의 창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헤아리며, 사랑과 이해, 희망으로 가득 찬 하루를 살아가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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