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91 - "돌아왔으면 됐다."
2025. 5. 11. 12:00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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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5:20~24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
오늘 본문은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아들의 비유’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우리가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부르죠. 지난 주간에 이미 매일 아침, 우리는 이 비유의 묵상을 시작했습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주일 설교는 매일 아침 묵상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매일 아침 묵상을 나누며 한 걸음 한 걸음 말씀 안으로 들어가는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본문에서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돼지를 치는 신세가 됩니다. 그의 인생이 밑바닥에 닿았을 때 그는 비로소 아버지 집을 떠올립니다.
누가복음서 15:17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이 말은 단순한 배고픔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해 낸 것입니다. 비록 ‘아들’이라는 자격을 다 잃었다고 느꼈을지라도, 그는 아버지의 품이 어떤 곳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올립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에게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절망의 순간, 많은 이들은 자신의 처지에 함몰되어 낙심과 자포자기에 빠집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깜깜한 어둠만이 가득하죠. 그런데 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올립니다. 이게 은혜예요. 사실, 어느 순간도 나 혼자였던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주위에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고, 언제나 누군가 나를 위해 빛을 비춥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죠. 나만 아프고, 나만 혼자인 듯, 나만 억울해서, 나에게만 시선을 돌리다 보면 그 많은 도움도, 그 많은 기도도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둘째는 그때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이게 그에게 얼마나 은혜인지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절망의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낙심과 좌절의 그늘이 여러분들을 휘감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종종 어둡고 차갑습니다. 아프고 쓰라린 실패가 우리 앞에 놓일 때가 있죠. 그때 여러분 마음속에 아버지의 집, 그 따스한 손길이 떠오르길 바랍니다.
지난주일, 어린아이들을 축복하며 기도할 때 우리 공동체는 한목소리로 우리 어린 영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그 소리는 그 아이들의 인생 가운데 계속 머물 것이라고 말입니다. 특별히 힘들고 어려운 때, 음침한 골짜기를 걸으며 늑대의 소리가 우렁찰 때, 그때, 마치 한 줄기 빛처럼 그 소리가 들리게 될 줄 믿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사랑받는 자녀이고,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있음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절망을 뚫고 일어나게 될 줄 믿어요. 둘째 아들도 그 은혜를 가졌기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겁니다. 그 작은 은혜가 그를 살리게 될 줄은 그도 몰랐을 테죠.
그렇게 그는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준비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은 이것입니다.
누가복음서 15:18~19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낮췄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잘못을 저질렀고, 실수를 거듭했습니다. 자신의 거창한 꿈은 허황된 것으로 판명이 났죠. 그는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과거, 실수, 실패를 자책했고, 더 이상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들이 아닌 종이 되기로 한 거죠.
그런데 놀라운 장면이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서 15:20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멀리서부터 그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 장면은 어디선가 본듯한 장면입니다. 우리나라 전례 문헌에 따르면 멀리 떠난 지아비를 기다리다 지쳐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설화가 있습니다. 그만큼 절박하고 애절한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저만의 심정은 아닐 듯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만난 아버지의 반응입니다. 아버지를 만난 둘째 아들은 자신이 준비한대로 말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합당한 벌을 스스로 정하여 아버지께 간청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이 준비한 긴 고백을 다 듣기도 전에 그를 안아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 하죠.
“돌아왔으면 됐다.”
그 말은 말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그 아버지의 포옹과 입맞춤, 옷을 갈아입히고 잔치를 벌이는 행동 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아무 조건도 없습니다. 질문도 없습니다. 추궁도 없습니다. 변명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돌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다시 ‘아들’이 됩니다. 오히려 그는 종들에게 외칩니다.
누가복음서 15:22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렇습니다. 아버지에게 중요한 건 ‘돌아왔느냐’입니다. 그것이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조건도, 계산도 없습니다. 아들의 지난 과거, 실패, 부끄러움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돌아왔기에’ 다시 아들입니다. 마치 요한복음 6장 37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로 오는 사람은 내가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랑이 바로 복음입니다.
심리학에서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유아와 양육자 간의 형성되는 강한 정서적 유대 관계가 아이의 사회성, 정서 발달 및 전반적인 심리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는 이론이죠. 그 애착이론을 주창한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존 보울비(John Bowlby)가 한 말이 있습니다.
“아이가 안정감을 가지고 자라기 위해서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 존재가 누구입니까? 바로 부모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아무리 실패해도, 부모는 말합니다.
“괜찮아. 돌아왔으면 됐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가 있습니다.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인데요. 제 또래 부모님들의 모습을 닮은 그런 드라마죠. 젊은 세대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제게는 심금을 울리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제게 가장 인상 깊고 가슴 찡한 명 대사가 있었어요. 이건 영상으로 보시죠.
https://youtu.be/biq3XcHgXqQ?si=plnq98hLSRI4DVf7
‘아니다 싶으면 빠구! 냅다 집으로 뛰어와. 아빠 집에 있어. 알지?’
그 대사를 듣고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늘 돌아갈 수 있는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었구나. 내가 잘나고, 내가 열심히 해서 뭔가를 이룬 것이 아니었구나. 내가 실패할 때, 좌절할 때, 세상 어디에도 나를 반기는 곳이 없을 때도 늘 뒤를 돌아보면 나를 기다리며 손짓하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제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나는 혼자서 이룬 줄 알았지만, 그 모든 날의 뒤에는 묵묵히 기다려주고, 자리를 지켜주신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과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잘잘못을 가지고 판단하지도 않으시죠. 우리가 얼마나 큰 성공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지, 또는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그런것을 묻지 않으십니다. 오직, 조건 없이 우리를 맞이하시며 “돌아왔으면 됐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무조건적 은혜(Unconditional Grace)"라 부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로마서 8:38~39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조건 없이 우리를 품으시고, 언제든 돌아올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실패도, 실수도, 부끄러움도, 그 사랑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돌아온 우리의 존재 자체로 충분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든든한 후견인이자 절대적인 지지자이십니다. 그것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삽니다. 여러분은 고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천덕꾸러기가 아니에요. 잘해야 인정받고 못하면 쫓겨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온전한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괜찮아. 돌아왔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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