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47 - 지금 주신 것에 먼저 감사하세요.

2025. 3. 13. 05:00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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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2:13~15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제에게 명해서, 유산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느냐?"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12장의 흐름에서 조금 빗겨 난 듯한 본문입니다. 새 번역본에는 이 본문에 소제목을 이렇게 붙여놓고 있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이 제목이 그리 타당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일 이 본문을 끝까지 읽은 후에 나눠보기로 하고요. 오늘 본문이 주는 의미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위선을 경계하라 하시고,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는 세상의 두려움보다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더 나아가 그 이후까지 책임지시는 주님을 신뢰하하고 당부하셨죠.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예수께 질문을 합니다. 질문의 내용은 재산 상속에 관한 것이었죠. 아마도 아버지가 재산을 두고 세상을 떠나신 모양입니다. 그런데 형제 중 하나가 자신에게는 재산을 상속해 주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아마도 질문하는 이는 장자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첫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독차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는 장자권에 대한 문제제기이니 중요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질문에 좀 시큰둥하십니다.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중이었는데 엉뚱한 질문으로 인해 이야기의 초점이 흐트러진 이유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지 질문에 대해 즉답을 피하십니다. 그 사람에게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신 거죠. 오히려 이 문제를 그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묵상 거리 하나를 던지시죠. 돈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이가 예수께 질문한 것은 상속에 관한 이야기였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율법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의 경우, 장자와 형제에게 상속의 배분까지 언급되어 있죠. 다만 장자에게 두 배의 상속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서는 다른 형제들의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장자에 대한 권리가 강했던 유대인들에게는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질문한 어떤 사람의 경우는 그렇게 정해진 규율조차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은데요. 이 부분에서 예수님은 상속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재물에 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십니다.

 

만약 장자가 다른 형제에게 상속을 주지 않고 자신의 장자권만을 주장하였다면 분란이 생길만한 일이죠. 그럼에도 그렇게 했다는 것은 형제애보다 재물이 더 좋았기 때문임은 분명합니다. 뭐, 사실 오늘날 형제들이 상속 때문에 다투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저는 어느 장례식장에서 형제들이 재산문제로 치고받고 하는 것을 본 적도 있죠.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어려서부터 다져온 가족 공동체의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유대인이라고 모두 형제애가 두터웠던 것은 아니죠. 가인과 아벨처럼 서로 척을 지는 경우도 당연히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형제애가 남달랐음은 주지의 사실이죠. 장자권만 해도 그렇습니다. 장자에게 상속은 다른 형제보다 두 배 더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게, 뭐 그냥 장자라고 두 배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장자가 두 배의 상속을 받는 대신, 장자는 자신의 형제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의무를 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눈에는 유대인의 상속이 장자 위주처럼 보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장자가 그런 형제애를 깨면서까지 재산을 독차지했다면, 다시 말하지만 형재애보다 재물을 더 우선순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지점을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거죠. 재산이 차고 넘쳐도 사람의 생명이 거기에 달려있지 않다고 말이죠.

 

이 부분은 마치 '세상의 두려움이 너를 힘들게 해도 영혼까지 죽일 수는 없다'는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재물이 좋아 보이고 나를 평안케 하는 것 같아도 우리 영혼의 행복은 거기에 달려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탐욕'이라는 단어가 나오죠. 탐욕이란 자신의 필요보다 더 가지려는 욕심을 의미하는 단어죠. 단테의 신곡에 보면 탐욕의 죄를 지은 자는 '탐욕지옥'에 들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탐욕지옥이라는 것이 가져도 가져도 만족함이 없고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지옥에서는 주신 것을 기뻐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하죠. 그래서 늘 불만과 불평에 휩싸입니다. 남의 것이 나보다 더 커 보이고, 나에게 있어도 남의 것을 더 빼앗어 와야 직성이 풀리죠. 그래서 단테는 탐욕을 자신과 이웃에게 가하는 죄라고 설명합니다.

 

먼저 지금 주신 것에 감사하세요. 작은 것이라도 주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받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도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면, 그것일 기뻐하고 감사하고 자랑하는 사람에게 더 주고 싶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의 심령과 주님이 같을 수는 없지만 패턴은 비슷합니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작은 것 하나에 기뻐할 줄 아는 이에게 주님은 더 큰 것을 주시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며 환하게 웃는 것을 제일 기뻐하시기 때문이에요. 

 

오늘 내 손에 쥐어진 결과물이 초라할지도 몰라요. 나의 삶이 작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감사하세요.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는 자가 큰 것도 귀하게 여김을 주님이 아십니다. 오늘을 감사할 줄 아는 자가, 하루하루가 모여 내 인생이 된다는 것을 아는 자죠. 그렇게 오늘도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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