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42 - 주님은 나를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십니다.
2025. 3. 7. 05:00ㆍ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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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1:52~54 너희 율법교사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가로채서,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막았다!" 예수께서 그 집에서 나오실 때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뜩 앙심을 품고서, 여러 가지 물음으로 예수를 몰아붙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 트집을 잡으려고 노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간도 그리스도인으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감사하게 받은 시간들, 최선을 다해 임한 하루하루는 값진 열매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줄 믿습니다.
율법학자를 향한 주님의 마지막 경고 메시지는 '지식'입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에게 지식의 열쇠를 가로챘다고 힐난하시죠. 이 말씀은 율법학자들의 위치, 그러니까 그들이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이끄는 중대한 직무를 어겼다는 것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왜곡했다는 뜻이죠.
고사성어 가운데 曲學阿世(곡학아세)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학문을 굽혀 세상 사람들에게 아첨한다.'는 뜻인데요.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좋은 학문을 배우고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세상 사람들에게 잘못하고 있다."
오늘 율법학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지적이 딱 이 말과 같습니다. 좋은 율법을 배우고는 그것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왜곡해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미 말씀드렸지만 율법의 핵심은 이웃 사랑과 공동체 사랑입니다. 이웃과 더욱 잘 지내고 함께 평화와 일치를 이루기 위해 세워진 것이 율법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이를 앎에도 불구하고 율법 자체를 절대화하여 갖가지 부칙들을 만들어 율법을 올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치 본질은 잃고 형식만 중요하게 남은 것처럼 말이죠.
여기에는 율법학자들의 이권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접근이 불편해야 합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을수록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다른 사람들은 무섭고 두려운 것으로, 어렵고 힘든 것으로 만들어 버린 거죠. 그래서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율법이 이웃 사랑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이제 이웃과의 다툼을 위해 존재해 버렸습니다. 마치 우리의 법이 그런 것처럼 말이죠. 어디 법이 남과 싸우라고 만들어졌겠습니까? 본래의 목적은 서로 선을 지키며 더불어 살도록 만든 것이 법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남은 것은 법은 싸우고 다투기 위해 존재할 뿐이죠.
이런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은 더없는 경고를 하시는데요. 하나님께로 이끌 열쇠를 가지고도 자신은 그 자리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죠.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이렇게 경고하신 적이 있죠.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27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이 자신만 버린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하나님께 가지 못하게 하는 우를 범한다는 것이죠.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처참합니다. 저는 정치적 상황은 잘 몰라요. 다만 많은 대형교회와 세력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득세하는 이 현상이 가슴 아프기 그지없습니다. 다른 것은 모르겠습니다. 이런 교회와 지도자의 모습과 몰골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일임은 틀림없기 때문이죠. 특정 이념과 특정 세력만으로 뭉치는 그 모습이 율법학자들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어디 이게 비단 일개의 무리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주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우리들 또한 주님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율법학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나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알고 배우죠. 때론 나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온전히 정립될 수도, 혹은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때론 나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이끌어질 수도, 아님 멀어질 수도 있죠. 그래서 우리의 주님에 대한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주님이 흐릅니다. 나를 통해 주님의 말씀이 퍼지고요. 나를 통해 세상이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나는 영적으로 공공재입니다. 주님은 나를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시기 위해 나를 택하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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