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24 -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손해가 아니라 유익으로 이끕니다.

2025. 2. 11. 04:45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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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0:40~42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모든 분 마음에 평화가 흐르길 기도합니다. 내 기분이 좋으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모든 것들이 용서되듯이, 내 안에 흐르는 평화는 오늘 일어나는 모든 외부적 일들을 잠재울 거예요. 그러니 이 시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안심하며 평안한 마음으로 시작하시길 빕니다.

 

어제 우리는 분주함이 주는 문제점을 묵상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신경을 쓰다 보면 정말 하려고 했던 일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죠. 마치 청소를 하다 보면 그런 경우들이 있어요. 분명히 집안을 청소하려고 시작했는데 케케묵은 옛날 사진들, 노트들, 물건들에 눈이 팔려서 읽다가 끝나는 경우들이 그렇죠. 저만 그런가요? 청소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마음이 참 묘해요. 혼자 있을 때는 청소하는데 불만이 없습니다. 가령, 집에 혼자 살아요. 그러면 집안 모든 청소가 나의 몫이죠. 그때는 모든 집안을 청소하는 것이 당연했죠. 그런데 같이 사는 사람이 생겨보세요. 나만 청소하면 불만이 생기죠. 억울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꼭 정확하게 나눠서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예는 또 어떨까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옷이 있어요. 그것은 나만 입고 싶어 하죠. 때론 나만 알고 싶은 좋은 장소가 있어요. 사랑도 그렇죠. 이런 때는 혼자 독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청소나 설거지, 일들은 혼자 하는 것이 억울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손해라는 개념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떤 것이든 이것이 나에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억울해하죠. 그리고 불만에 싸입니다. 반면 손해라는 개념이 아니라 이익이라는 개념이 들면 그 반대가 되죠.

 

그렇다면 어쩜 청소나 설거지가 문제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청소가 나에게 유익을 준다면, 설거지하는 것이 나에게 복을 준다면 어떨까요? 내가 누군가를 섬기고, 높이고, 축복하는 일이 나에게 상급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늘 낮아지라고 하셨죠. 남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억울하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왜 나만 낮아져야 하는지, 왜 나만 섬겨야 하는지를 따지기 때문이죠. 거기에는 우리의 손해 개념이 작동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왜 낮아지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왜 우리더러 섬기라 하셨는지, 왜 이웃을 사랑, 그것도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많은 이는 이 말씀이 버겁고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손해이니까요. 그런데 주님의 이 말씀에는 이런 비밀이 있죠. 내가 자발적으로 낮아지면 주님이 우리를 높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남을 섬기면 주님께서 나를 섬겨주시기 때문이고요. 내가 이웃을 사랑하면 주님의 권세로 우리가 모든 이웃들로부터 사랑받는 자로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게 비밀이에요. 손해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비밀이죠. 이것을 아는 자는 합니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여전히 억울하죠.

 

오늘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우리는 수많은 일로 염려합니다. '이건 내 손해 아냐?' '이렇게 하면 나만 억울해' '이건 좀 힘들지 않나?' '왜 나만 이렇게 해야 해?' 온통 손해 보고, 억울한 일로 염려하고 걱정하죠. 이러다 나만 망할 것 같고, 이러다 나만 뒷처질 것 같은 생각에 골몰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하나의 구절로 요약한다면 이것이라고 믿어요.

 

요한일서 1:2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권면하신 일은 이 문장을 우리로 하여금 이루게 하시기 위함이에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손해가 아니라 유익으로 이끕니다. 남을 섬기는 일은 손해가 아니라 유익입니다. 남을 돕는 일은 내 재물을 축나는 일이 아니라 채우는 일입니다. 나를 낮추고 남을 낫게 여기는 일은 나에게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예요.

 

한 가지 간단한 첨언을 하고 묵상을 마치죠. 이런 주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르다는 어떻게 했을까요? 상상해 보셨어요? 자기 하던 일을 다 그만두고 마르다도 마리아처럼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을까요?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아마도 마르다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부엌으로 돌아갔을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선택한 부엌의 일도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주님의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 일이 자신이 선택한 가장 좋은 몫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손해라는 개념으로 일을 바라보면 아무리 거룩한 일도 쓰레기가 됩니다. 반면 아무리 하찮은 일도 주님의 일, 주님께서 아시고 맡기신 일로 믿으면 그 하찮은 일은 우리의 축복의 열쇠가 되죠. 오늘 여러분에게 맡겨진 일은 어떤가요?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일인가요? 아니면 나에게 주신 축복의 통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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