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222 -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2025. 2. 7. 04:45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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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10:25~37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 두고 갔다.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좋은 아침입니다. 또 한 주가 지나갑니다. 이번 주는 연휴의 후유증과 추위로 힘든 한 주간이었죠? 그럼에도 잘 버티고 기쁘게 마무리하는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하루, 힘차게 주님의 자녀로 축복의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오늘은 본문이 좀 길죠? 읽으셨다시피 오늘 본문은 너무도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라고 알려진 말씀이죠. 늘 그렇듯이 이 본문 안에는 많은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하나씩 조목조목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담겨 있죠. 그런데 오늘은 전체 본문은 통으로 묵상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이 너무 잘 알려져서도, 또 전체적인 묵상을 하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내용의 의미와는 달리 말씀을 읽는 동안 제게 강력하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오늘 본문을 천천히 한번 정독을 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본문은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하죠. 아시다시피 율법학자가 찾아왔다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도 이를 명확히 하죠. '시험하며 물었다.'라고 말이죠. 그의 질문은 '영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께서 많은 이로 하여금 받았던 질문이죠.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예수께서 이렇게 되물으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이는 아마도 묻는 자가 율법학자였기에 물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 예수님의 반응이 저에게는 오늘 다르게 다가왔어요. 마치 예수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이 새로운 것이 아닌, 모두가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답하죠.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그의 대답을 긍정하시면서 이렇게 말하십니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그런데 이 반응은 재차 다시 등장합니다. 율법학자는 또 묻죠. '누가 이웃이냐?'라고 말이죠. 아마도 이는 자신이 좋은 이웃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한 질문인 것 같죠.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때 등장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굳이 다시 설명드리지 않아도 되겠죠? 그 내용을 분석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시고 난 후, 다시 물으시죠. 누가 이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이죠. 그때 율법학자는 이렇게 대답하죠.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그 대답에 만족해하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오늘 본문이 끝나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자! 여러분은 여기까지 보시고 오늘 본문이 어떻게 들리셨나요? 제가 느낀 예수님의 독특한 반응이 여러분에게도 느껴지셨나요?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중요한 말이 두 번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바로, '그대로 행하여라'와 '이와 같이 하여라'죠.

 

사람들은 영생이 뭔지, 하나님 나라가 뭔지, 혹은 믿음이 뭔지, 그리스도인이 뭔지를 묻습니다. 또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속에서 강도 만난 제사장이 어떠니, 레위인이 어떠니, 사마리아인이 어떠니를 따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사장도, 레위인도 다 이해가 돼요.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제사장은 옳은 일은 한 것입니다. 제 아무리 종교 지도자 교육을 받았어도 강도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죠. 어디 나도 강도 만난 이와 같은 처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 두려움에 도망치는 것이 쉽게 비난받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오늘 저에게 주시는 강력한 말씀은 이것이었어요. 지금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들에게는 예수께서 율법에 어긋난 가르침을 한다고 의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율법? 종교? 교리? 더 나아가 사상이나 이념?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면 돼!"

"제사장도, 레위인도, 사마리아인도 아니고, 모든 계급, 계층과 인종, 세대와 성별,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자비를 베풀면 돼!"

 

이 사람이 원수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든, 기분 나쁜 사람이든, 그런 것이 내 삶의 중심이 아닙니다. 내 삶의 중심은 오직,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삶의 파고가 어떠하든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에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사랑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보다 앞서고요. 사랑은 그 어떤 지혜보다 가장 오래된 우리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지어졌고, 사랑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빼면 시체입니다. 감정의 기복이 있고, 여러 옳고 그름을 다투지만 결국 우리의 마지막은 사랑입니다. 사랑보다 더 큰 힘은 없습니다. 그냥 사랑하세요.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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